변호사 압수수색 거부권 없는 나라…OECD 중 한국 유일

정채영 2023. 9. 1.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변협 "변호사 조력 받을 권리 침해"
법원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 91%
"의뢰인과 신뢰 깨져…ACP 도입"

최근 검찰의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이 반복되자 변호사 업계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28일 오전 대한변호사협회가 '수사기관은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 행위 중단과 법원의 영장발부에 신중하라'며 집회를 열었다. /정채영 기자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최근 검찰의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이 반복되면서 변호사들이 착잡하다. 법조계에서는 변론권이 위축될까 노심초사하며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비밀유지권 제도화를 외치고 있다.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도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변호사들은 지난달 28일 집회를 열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 검사 지휘를 받아 대형 로펌 압수수색을 강행해 의뢰인 자료를 제출받는 사태가 발생했다"며 "헌법상 보장되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금융 당국 및 수사당국의 수사행위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변호사 압수수색은 손쉽고 비겁한 수사"

지난달 10일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법무법인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율촌은 올해 초 카카오와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을 벌일 때 카카오 측 법률 자문을 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는 공개매수 저지 관련 법률 자문 내용이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에도 로펌 압수수색이 도마에 올랐다. 당시 검찰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조세포탈 혐의 자문을 맡았던 율촌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2018년에는 강제징용 사건 지연 의혹을 수사하던 중 당시 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인 애경산업의 대리 김앤장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작년 12월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물 김만배 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태평양 압수수색을 필두로 검찰의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은 최근 더 잦아지고 있다. 법조계는 변론권 위축과 함께 의뢰인과의 신뢰가 깨질 것을 우려한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는 "의뢰인은 변호사와 상의하며 본인 방어를 준비한다"며 "그 과정에서 나중에 압수수색을 통해 노출될 수 있다고 하면 어느 누가 사실을 다 드러내고 방어권을 위한 노력을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의뢰인이 온전히 로펌을 믿고 사건을 맡길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로펌이 방어를 위해 만들어 둔 자료를 압수해 수사를 하는 방법은 손쉬운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안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으로 의뢰인과 대화 내용이나 의견서를 확보한다는 건 너무 쉽게 수사하려는 것"이라며 "오히려 찾을 수 없는 곳에 두는 꼼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기업의 법무팀을 압수수색하기도 한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에서 나아가 기업의 법무팀이나 해당 사건 담당 인하우스 변호사를 압수수색해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며 "비겁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집행은 법원의 영장 발부가 전제다. 이 때문에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무분별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한두 번 발부가 되다 보면 관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의 압수수색 영장 관련 통계 현황을 보면 압수수색영장 청구 건수 대비 발부 건수는 2011년 청구 10만8992건에 발부 9만5123건, 2022년 청구 39만6671건에 발부 36만1476건이다. 발부율 2011년 87.3%에서 2022년 91.1%까지 올랐다.

영장전담 부장판사 출신 허경호 변호사는 "자문 자체에 불법성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인수합병 작업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로펌을 압수수색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원칙적으로는 자료의 임의 제출을 요청하고 협조하지 않을 경우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정도로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이 된 적은 없었다"며 "발부가 된다 싶으니까 계속해서 청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헌법 제12조 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다만 변호인이 압수수색을 거부할 권리는 없다.

◆도입 앞서 수사권 위축 막을 견제장치 필요

거부할 권리를 명시하는 제도가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이다. 변협도 "ACP는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핵심인 권리이자 적법한 법 집행을 위한 근본적 가치"라며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이 제도가 입법화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국가들은 구체적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변호사의 비밀 유지 의무와 제3자에게 이를 공개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가장 최근 2019년 일본마저 비밀유지권 제도를 도입하면서 한국만 남게 됐다.

지난 2월 최강욱 의원 등 14인은 변호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했으나 아직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정안은 '누구든지 다음 각호(변호사가 직무와 관련해 의뢰인과 의사 교환을 한 내용, 의뢰인으로부터 제출받은 서류나 자료 또는 물건)의 사항에 대해 공개, 제출을 요구하거나 열람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변호사업계의 숙원이다.

다만 ACP를 도입하면 자칫 수사권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상응하는 법조윤리 구축과 사법방해죄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부권을 허용하더라도 변호사가 공범의 혐의가 있는 경우 등 예외 조항도 필요하다.

chaezero@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Copyright © 더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