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층간소음, 두려움이 시작되는 일상은 [이.단.아]

진달래 2023. 9. 1.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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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소설이 더 흥미로운 건 '지금 여기의 두려움이'라는 주제로 총 16편의 단편을 모은 문예지 기획 수록작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얘기하던 그는 대뜸 "여기 들어오기 전에 나랑 얘기라도 좀 하시지"라고 말을 꺼내더니 빌라에 여러 집이 경매에 넘어갔던 얘기 등 심란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곤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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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그들은 내게 속하고 나는 그들에게 속하고' (현대문학 202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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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박연준 작가. 작가 제공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해 벌어진…' 심심치 않게 접하는 소식이다. 폭행, 심하면 살인 사건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이웃이 이사하면 '이번엔 조용한 사람들이어야 하는데' '유별난 사람들이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선다. 언제부턴가 도시인에게 층간소음은 일상의 스트레스이자 공포가 됐다.

월간 현대문학(2023년 8월호)에 실린 박연준의 단편소설 '그들은 내게 속하고 나는 그들에게 속하고'는 그 일상을 한 겹씩 풀어낸다. 그 안의 불쾌, 초조, 불신, 두려움까지 얽히고설킨 감정을 서서히 끄집어 내며 우리를 광각의 시선으로 비춘다. 소설이 더 흥미로운 건 '지금 여기의 두려움이'라는 주제로 총 16편의 단편을 모은 문예지 기획 수록작 중 하나라는 점이다.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체감하는 사회적 공포에 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의 화자 '나'는 남편과 5층짜리 빌라 502호에 이사를 왔다. 시세보다 2,000만 원 싼 가격으로 집을 매매해 좋았던 기분은 이사 당일부터 상해버렸다. 402호 거주자이자 빌라 관리인으로 자신을 소개한 50대 초중반쯤 되는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면서다.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얘기하던 그는 대뜸 "여기 들어오기 전에 나랑 얘기라도 좀 하시지"라고 말을 꺼내더니 빌라에 여러 집이 경매에 넘어갔던 얘기 등 심란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곤 돌아갔다.

며칠 뒤 가구가 들어오는 날. 이번엔 402호 여자가 승강기로 짐을 옮길 때 돈을 내야 한다고 화를 내며 등장했다. 이후로 층간소음이 심하다며 시도 때도 없이 항의를 한다. '나'는 뒤늦게 전 주인도 결국 이 문제로 싸우다 이사를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층간 소음이 심하니 조심합시다. 제발, 아래층도 생각해야죠.' '담배꽁초, 누가 버리는지 CCTV 까서 확인해볼까요?' 빌라 게시판에 글들을 읽은 후로 '나'의 근심은 커져만 간다.

게티이미지뱅크

잘 지내보려 노력도 했다. "무식하고 막무가내이고 말이 안 통하는" 이웃을 일단은 '교양과 여유'를 앞세워 대응하자는 전략도 세웠다. 과일을 가져가 호소도 해보고, 방음 매트도 깔고 믹서기 사용도 자제했다. 오줌 소리도 다 들린다는 아랫집 성화에 남편에겐 소리가 덜 나도록 앉아서 일을 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고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나'와 남편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제 화자에게도 참을 수 없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작가는 현실을 촬영한 듯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 날 남편은 바닥에 귀를 대고 은박지 같은 것을 살살 벗기는 소리가 난다고 스트레스를 받더니, 주먹만 한 자갈돌 굴리는 소리에 급기야 폭발해 버린다. 위층은 옥상이니 범인은 402호, 아랫집 사람들일 것이라고 단정한 남편은 옥상으로 뛰쳐 올라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묘한 표정으로 돌아온 남편. 범인은 옆집 501호 아들들이었다. 옥상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던 것. 보호자에게 주의를 주고 내려왔지만 개운하지 않은 뒷맛이 남는다.

"여전히 나는 온갖 소음을 듣는다." 소음도 갈등도 사람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공간을 타인과 공유할 수밖에 없는 도시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그 진짜 불씨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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