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단식인가"... 민주주의 파괴 막겠다는 이재명의 승부수
대여투쟁 카드 없어… "명분 없다" 의문도
정부·여당은 '뜬금포·맥락 없다' 맹비난
“이 순간부터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난데없이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야당 대표로서 윤석열 정권에 맞설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하지만 퇴로 없는 단식 카드에 당내 의원들조차 “무엇을 위한 단식인가”라며 어리둥절한 반응이다. 검찰 출석을 피하기 위한 ‘방탄용 단식’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무기한 단식' 돌입 "민주주의 파괴 막겠다"
이 대표는 이날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다음 날 시작하는 정기국회를 비롯해 제1야당 대표의 청사진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 대표는 갑자기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단식을 선언했다. 이후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이 설치됐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며 “민주주의의 파괴에 맞서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 그 맨 앞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을 향해 △민생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사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입장 천명과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전면적인 국정쇄신과 개각 등 3가지를 요구했다. 이어 그는 “국민의 삶이 무너진 데는 저의 책임이 크다. 퇴행적 집권을 막지 못했고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막지 못했다”며 자성의 목소리도 냈다.
갑작스런 단식에 어리둥절… '방탄용' 의심도
단식은 갑작스레 결정됐다. 전날 저녁 당 지도부와 상의하면서 이 대표의 뜻을 밝혔다고 한다. 지도부 의견은 갈렸다. 다만 더 이상 효과적인 대여 투쟁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 단식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충분한 내부 소통이 없었던 만큼 민주당 의원들은 선뜻 단식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수도권 초선 의원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은 상태에서 단식만으로 싸우겠다는 건 명분이 없다”며 “대안을 보여주지 않고, 전략 변화 없이 대여 투쟁만 이어가는 것으로는 여론을 끌어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일단 지켜보자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비이재명(비명)계 김종민 의원은 “시간이 지나봐야 어떤 맥락인지 판단이 들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9월 검찰 조사와 체포동의안 표결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던 이 대표가 '방탄용'으로 단식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이미 단식을 시작한 만큼, 검찰이 이 대표를 소환하기도 쉽지 않다. 또 검찰에 출석하더라도 동정론이 쏠릴 수 있다. “추석 전까지 시간을 벌 수도 있는 것”(수도권 재선 의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어처구니없다는 입장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뜬금포 단식’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개인비리 수사에 단식으로 맞서는 것은 맥락 없는 일”이라며 “형사사건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은 "마음에 안든다고 단식해선 안된다고 이 대표 본인께서 말씀하셨죠"라며 이 대표가 과거 성남시장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식은 약자들의 최후 저항수단이다.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은 저항이 아닌 땡깡이나 협박'이라고 쓴 것을 거론하기도 했다.
다만 이 대표는 “단식한다고 해서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며 “검찰 수사 역시 전혀 지장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도부 관계자는 “이 대표 출석 일정은 조율 중”이라며 소환에 응할 방침을 밝혔다.
"사법리스크? '검찰 스토킹'"… 이런 걸로 영장청구하나
이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사법리스크’ 지적을 ‘검찰 스토킹’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년 가까이 400번 넘는 압수수색을 통해 먼지 털 듯 털고 있지만, 단 하나의 부정도 없다”며 “부당하게 공격받는 사람에게 왜 정치적 공세를 당하느냐고 문제 제기하는 자체가 문제”라고 반문했다.
전날 국회 윤리특위에서 김남국 무소속 의원 제명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국민 눈높이에 맞춰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국회 위원회와 국회의원 총의에 맡기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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