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 그림’ 자폐 미술학도 科수석… 동기들 “존경”
한남대 회화과 1학년 김지우(20)씨는 중증 자폐성 장애인이다. 세종예술고에 다니면서 하루 8시간씩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고 올해 3월 한남대에 장애인 전형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합격했다.
김씨는 지난 1학기 4.5점 만점에 4.29점을 받아 학과 전체 1등을 했다. 유화나 아크릴화를 주로 그려왔지만 전공 과목 중에 한국화를 주로 다루는 ‘표현 연구’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교양 과목인 코딩 강의에서도 혼자 만든 과제물로 A 학점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교양 과목에서는 앞에 나와 발표를 하거나 함께 시험을 치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김씨를 위해 담당 교수들이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내면 점수를 주기도 했다.
김씨는 어머니 신여명(51)씨와 함께 강의를 듣고 있다. 신씨는 “지우가 낯설지 않도록 딸과 같이 입학한 새내기 동기들과 2~3명씩 돌아가며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동기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특히 시험 대신 그림으로 평가했던 교양 수업에서 담당 교수가 김씨의 동기들에게 평가를 맡겼는데 동기들은 “지우가 우리가 치른 시험보다 그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게 느껴진다”며 대부분 높은 점수를 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기들은 “지우 실력은 리스펙트(존경)”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생후 13개월 때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할머니가 “지우가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하자 어머니가 김씨를 동네 소아과에 데려갔다가 “자폐 소견이 보이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결국 18개월 때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김씨가 미술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4살 무렵이었다. 볼펜을 한 번도 떼지 않으면서 토끼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어머니 신씨는 “보통 얼굴이나 귀부터 그리기 시작하는데, 지우는 발가락부터 거꾸로 그리는 게 특이했다”고 말했다.
올해 스무 살인 김씨는 이미 35번의 전시회에 참여하고 100점의 작품을 낸 작가다. 2014년부터 장애인 복지재단인 밀알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아 발달장애 아동 미술 지원 사업 ‘봄 프로젝트’ 소속 작가로 활동했다. 재단에서 재료비, 교육비, 전시회 개최 등 매년 250만원 정도를 지원받았다. 작년 11월 전시회에서는 ‘꽃이불 고양이’라는 작품이 2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대학에서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김씨가 달라지고 있다. 앞서 김씨는 자화상을 그릴 때도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다고 한다. 자화상에도 눈길이 옆으로 향하는 모습만 담겼다. 하지만 요즘엔 자화상도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김씨에게는 두 살 많은 비장애인 오빠가 있다.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에 다니고 있는 오빠는 초등학생 때 “왜 내 동생은 헬렌 켈러처럼 설리번 선생님을 못 찾아?”라고 어머니 신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신씨는 이제야 아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겠다고 했다. “우리 가족과 발달센터 선생님, 학교와 학원 선생님, 대학 교수님과 동기들이 모두 지우를 위한 설리번 선생님이죠. 지우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면 가족이 거실벽, 마루 바닥, 심지어는 일기장까지 내줬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지우의 꿈을 응원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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