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 父子 세습’ 56년… 가봉에 군부 쿠데타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9. 1. 04: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선 결과 무효”… 대통령 축출, 친위대장이 과도 지도자로
혁명이냐 반란이냐 - 지난 30일(현지 시각) 쿠데타를 일으킨 아프리카 가봉의 군인들이 브리스 올리귀 응게마 사령관을 헹가래 치며 환호하고 있다. 군부는 이날 발표된 대선 결과를 무효로 하고 알리 봉고 온딤바 대통령을 체포했다. 과도 국가재건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된 응게마 사령관은 “봉고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해 3선을 하려 했고, 쿠데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AP 연합뉴스

니제르 쿠데타 이후 한 달여 만에 아프리카에서 또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번엔 아프리카 중부의 가봉이다. 지난 30일(현지 시각) 알리 봉고온딤바(64) 대통령의 3연임이 확정됐다는 대선 결과가 발표되자, 군부가 “선거 결과는 무효”라며 들고일어났다. 봉고 대통령은 1967년부터 2009년까지 만 42년간 집권한 오마르 봉고온딤바 대통령의 아들로, 자신도 14년째 집권해 왔다. 부자가 도합 56년간 가봉을 통치한 것이다.

이날 브리스 올리귀 응게마 장군 등 가봉 군 고위 장교 12명은 국영 TV 가봉24에 나와 “모든 안보·국방 기관을 대표하는 우리 ‘과도 국가재건위원회’가 이제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며 “오늘 발표된 선거 결과는 신뢰할 수 없으므로 모두 무효”라고 선언했다. 가봉 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개표 결과 봉고 대통령이 6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포함해 공화국 내 모든 국가 기관을 해산한다”며 “추가 통지가 있을 때까지 국경을 폐쇄하겠다”고도 밝혔다.

30일(현지 시각) 군부 쿠데타로 가택 연금된 알리 봉고 가봉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동영상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공화국 수비대 사령관인 응게마 장군은 이날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봉고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해 3선을 하려 했다”며 “쿠데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다들 (대통령에 대한) 큰 불만이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며 “결국 군대가 그 책임을 떠안았다”고도 했다. 응게마 장군은 아버지 오마르 봉고 대통령의 경호실장 출신으로, 그가 이끄는 공화국 수비대는 알리 봉고 대통령의 친위대다. 가봉 군부는 이날 오후 “응게마 장군을 만장일치로 과도 재건위원회 의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르몽드는 “쿠데타가 성공할 경우 그가 차기 지도자(대통령)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중부 아프리카 가봉에서 군부가 권력 접수를 주장하고 쿠데타를 선언한 가운데 30일(현지시간) 수도 리브르빌에서 주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봉은 세계 원유 생산량 순위 30위권의 산유국으로, 석유 덕분에 비교적 안정적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봉고 가문의 반세기 넘는 장기 집권에 민간 부문의 발전이 정체되고, 부패 문제가 심각했다. 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급등, 국민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였다. BBC는 “수도 리브르빌에서는 시민 수천명이 뛰쳐나와 봉고 정권의 몰락을 축하했다”고 전했다. 야당도 일단 군부 편을 들었다. ‘변화를 위해(PLC)’당 대표 니콜라스 응게마는 “봉고 가문의 집권이 너무나 길었다”며 “군사 개입이 정권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봉고 대통령은 반역 혐의로 체포돼 가택 연금 중이다. 그는 이날 소셜미디어 동영상을 통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항의의 목소리를 내 달라(make noise)”고 간청했다. 봉고 대통령은 아버지 오마르가 사망한 2009년 대선을 통해 권좌에 올랐다. 이어 2016년 매표(買票)와 부정 개표 의혹을 받으며 5500여 표 차이로 간신히 재선에 성공했고, 올해 3연임에 나섰다. 201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해외에서 5개월간 요양하다 쿠데타를 겪기도 했다. 이 쿠데타는 핵심 주동자들이 사살·체포되며 수시간 만에 진압됐다.

지난 2015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아들 봉고 대통령이 출연해 정준하씨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캡처

가봉은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먼저 한국과 수교(1962년)한 나라다. 봉고 가문도 친한파로 알려졌다. 아버지(오마르 봉고) 네 번, 아들(알리 봉고) 한 번 등 총 다섯 번 방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가봉 수도 리브르빌에 ‘유신(維新) 백화점’을 지어줬고, 알리 봉고 현 대통령은 2015년 국내 한 방송사의 예능 프로 ‘무한도전’에 깜짝 등장한 적도 있다. 당시 자신의 경호실장이던 박상철(71) 한인 회장과의 끈끈한 인연으로 출연했다고 알려졌다. 태권도 사범 출신의 박 회장은 봉고 대통령이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84년부터 최근까지 약 40년을 최측근으로 일해 왔다. 두 아들 진형(42)씨와 건형(40)씨도 가봉 대통령실에서 일했다.

주(駐)가봉 대사관에 따르면 이들을 포함해 총 40여 명의 한국 교민이 가봉에 있으며 모두 무사하다고 알려졌다. 대통령 부인 비서관으로 일하는 한국인 남성 한 명이 쿠데타 과정에 구금됐으나, 현재 안전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일단 사태를 관망 중이다. 1960년까지 가봉을 식민지배했던 프랑스는 이날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상황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아프리카의 정세 불안 가중이 우려된다”고, 중국은 “봉고 대통령의 신변 안전과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한다”고 했다. 아프리카연합(AU)은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