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외교 펼치던 정부, 88올림픽 앞두고 문제제기 자제

김은중 기자 2023. 9. 1.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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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로 본 정부 대응 변화

2010년대 들어 기밀이 해제된 외교문서를 보면 우리 정부가 1983년 KAL기 격추 사건 당시 물밑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대응했는지 알 수 있다. 정부는 사건 초기 진상 규명과 소련 규탄을 위한 외교에 역량을 집중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미·소 간에 ‘신데탕트’ 국면이 조성되고,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 등을 의식해 문제 제기를 자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KAL기 격추 직후 주한 미국 대사, 주한미군 사령관을 접촉해 진상 규명과 소련 규탄을 위한 외교에 나서기로 한다. 외무부(외교부 전신)는 9월 2일 장관 명의로 된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모든 재외공관에 국제적 규탄 여론 조성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주재국 정부가 소련 대사를 불러 사실 규명을 요청하도록 교섭하라”고 했고, “소련 외교관과의 개별 접촉을 지양하고 소련 초청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이후 유엔 안보리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비슷한 노력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듬해 5월 1년도 안 돼 이를 무효화했다. “18년 만에 이뤄진 김일성의 소련 방문으로 북·소 관계가 강화될 조짐이 보이는 등 정세가 변했고, 소련이 단시일 내에 책임을 시인하고 배상 요구에 호응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6월엔 비(非)정치 분야 교류에 대해선 개별 사안별로 판단해 신중하게 대처하기로 했다. 이후 우리 국민 8명이 세계지질도편찬위원회 국제 행사 참석차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엔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원칙은 유지하되 정치 문제화는 피한다”는 방침을 세운다. 당시 작성된 문건을 보면 ① 사건의 ‘정치 문제화’를 지양하고 ② 정부 차원의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으며 ③ 민간 차원의 추도식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80년대 중반 한국이 북방 외교를 전개했고 이어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하면서 진상 규명에 소홀해졌다’는 유족들 문제 의식이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되는 부분이다. 안기부 당국자는 외무부와 통화에서 “KAL기 사건이 올림픽 성공과 직결돼 있고 이번 사건을 크게 다루면 소련 등의 참가 문제가 움츠러들 것”이라며 “언론 등에서도 가급적 소규모로 다루는 것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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