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감세 ‘신화’

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2023. 9.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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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의 법인세 인하 실험, 재정 적자·양극화만 초래
尹정부도 감세정책 택해 저소득층 지원 축소 우려
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경제학계에 신자유주의자들이 창작한 ‘멋진 신화’가 있다. 소득세 감세는 노동자의 근로의욕뿐만 아니라 실질소득을 높이므로 저축과 노동공급이 늘어나 생산량이 증가하고 물가가 안정된다. 한편 법인세 감세는 기업의 이윤을 늘리므로 투자와 고용이 증가해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경제성장이 이룩된다(공급경제학). 이런 경제성장의 성과는 시간이 지나면서 물 흐르듯 중·저소득계층에 분배돼 소득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낙수효과). 또한 이런 경제활성화는 세수 증가를 가져오므로(래퍼곡선) 재정적자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이런 감세논리는 친기업적 규제완화 등 정부개입 축소로 이어져 오직 시장만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논거가 되었다.

이런 논리는 미국과 영국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980년대 초 미국 공화당 레이건 정부와 영국 보수당 대처 정부가 등장하는데 디딤돌이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정부는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정부가 바로 문제다”고 천명하면서 ‘정부는 악덕이고 시장은 미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감세가 모든 경제문제의 ‘만병통치약’으로 굳게 믿으며 경제정책의 으뜸으로 삼았다. 이런 믿음으로 시작된 레이건 정부의 감세정책은 이후 미국의 조지 부시 정부와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신념이 되었고 세계로 확산되면서 대부분 국가의 보수주의 정당이념으로 정착됐다.

그러면 이런 감세정책의 성과는 어떨까?이준구 교수에 의하면 감세정책 실험은 경제를 활성화시키지도 못했고 막대한 재정적자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양극화만 초래했다. 또한 다수의 실증연구 결과는 감세정책이 노동공급, 저축과 투자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급기야 부시 정부의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하면서 세계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작년 영국 트러스 정부는 어떤가? 40년 전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며 재정적자에 대한 대책 없이 감세정책을 강행했다가 런던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고, 45일 만에 수상이 사퇴하면서 감세정책은 철회됐다. 이렇듯 경제활성화의 비법으로 선전됐던 이들 정책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재정적자, 금융위기와 양극화만 초래하는 핵심요인이 되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 교수는 아직도 이런 정책이 현실 정치가의 지침이 되는 것에 대해 ‘나쁜 신념과 정책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되묻고 ‘좀비 아이디어’로 명명했다. 이 정도면 감세논리는 이념을 넘어 신화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 아닐까?

많은 경제학자는 감세정책의 이런 성과의 이유에 대해 연구했다. 첫째, 기업투자는 법인세 감세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한 것보다 훨씬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업가는 동물적 직관(animal spirit)에 의한 미래전망과 시장상황에 따라 투자를 결정하지 감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둘째, 기업이익의 상당 부분은 사실 독점력에 대한 보상이지 투자에 대한 수익이 아니다. 따라서 감세는 단순히 독점이윤을 기업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런 여윳돈은 사내유보금 형태나 자사주 매입 등으로 활용돼 주주의 이익을 높였지 투자와 고용증가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셋째, 세계화로 많은 기업이 다국적화돼 있기 때문에 감세효과에 의한 기업이익이 외국인에게 이전돼 국부가 유출되므로 경제성장률이 낮다. 넷째, 감세는 재정적자를 유발하므로 그 수지를 맞추려면 다른 세금을 올리거나 여러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 있는 공적지원에 대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감세를 곧 서민증세라고 비판하는 이유이다. 감세정책 효과 중 단 하나 분명하고 강력한 결과는 기업과 부자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상당한 보수주의 정치가들은 이 신화를 이 땅에서 구현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 후 투자는 감소했고 기업 사내유보금만 2011년 약 165조 원이나 쌓였다. 고용률은 59% 전후로 제자리 걸음하고 재정적자는 거의 11조 원에 이르렀다. 형용모순인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해 4년 동안 근로소득세 증세(48%), 주민세(4.5배)와 담뱃세 인상(80%)으로 대응했다. 법인세 인하가 서민증세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감세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벌써 전년대비 40조 원의 조세가 덜 걷히고 있다. 이 중 법인세 감세액이 16조8000억 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세수부족이 중·저소득층에 필요한 공적지원의 축소로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교육부문 노동부문 R&D부문 등을 ‘이권카르텔’로 공격하는 모양새가 예산삭감을 위한 조짐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신화는 상상 속에서 미몽이지만 현실로 나오는 순간 악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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