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환의 두잉세상]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전호환 동명대 총장 2023. 9.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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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환 동명대 총장

셰익스피어의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 도시인 베로나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Veneto)주의 주도이다. 인구 26만여 명의 아담한 관광도시로 동쪽의 베네치아와 서쪽의 밀라노 사이에 있다.

로마 시대와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벨기에와의 1차전을 치른 도시이기도 하다.

베로나에는 오페라공연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야외공연장인 아레나(Arena)가 있다. 아레나는 관객들이 빙 둘러싸인 객석에서 중앙을 볼 수 있는 원형경기장이다. 로마 시대의 아레나는 검투사와 맹수 간 사투를 벌이는 검투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베로나의 아레나는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앞선 AD 30년에 건축되었다. 수용인원은 3만 명이다. 검투 경기는 시각으로 즐길 수 있지만, 청각적 효과가 그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포효하는 맹수의 몸을 가르는 날카로운 검의 소리에 로마인들은 광적으로 환호했다. 마이크와 스피커 등이 없던 시기라 아레나의 설계에 자연음향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청중을 모으는 성공의 열쇠였다. 멀리 관중석에서 검투사와 맹수의 숨소리까지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 높은 음향 기술이 구현되었다.

로마의 멸망과 함께 검투 경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아레나의 존재 이유도 잊혔다. 로마의 콜로세움 외벽의 돌들은 집 짓는 구조물로 뜯겨나갔다. 베로나의 아레나도 근대까지 황폐하게 버려져 있었다. 20세기 초 테너 가수인 제나텔로가 베로나 아레나의 완벽한 자연음향 조건을 확인하면서 아레나를 역사 속으로 다시 소환했다. 1913년 8월 10일 이탈리아의 영웅 주세페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오페라 ‘아이다’를 이곳에서 공연한 것이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세계대전으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매년 4, 5편의 오페라를 여름밤에 개최해 왔다.

올해로 100회째인 ‘2023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6월 16일부터 9월 9일까지 총 49회의 공연이 현재 진행 중이다. 공연될 오페라는 대부분 베르디의 인기 작품으로 ‘아이다’ ‘카르멘’ ‘세비야의 이발사’ ‘리골레토’ ‘라 트리비아타’와 ‘나부코’ 등이다. 푸치니의 ‘토스카’와 ‘나비부인’도 있다. 6월 16일 개막작은 전통을 따라 베르디의 ‘아이다’였다. 공연 입장객은 2만 명 매진이었고 다음 날 17일 두 번째 공연도 2만 명이 입장하여 신기록을 세웠다. 입장권은 약 7만 원에서 60만 원까지로 좌석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올해는 관람객 60만 명을 예상한다고 한다. 작년까지 매년 관람객은 약 50만 명이었고 이들의 60%는 세계 114개국에서 왔다. 입장료 수입은 약 300억 원 내외이고 오페라 축제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6000억 원이 넘는다. 축제 기간에 오페라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인원만 1500명에 달한다. 조상이 남긴 유적 하나가 베로나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명대는 지난 4월부터 ‘조찬 클래식 음악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강사와 아티스트에 의해 진행되기에 이른 아침에 열리는 포럼임에도 신청자가 120여 명이나 된다. 여름 방학에는 베로나 오페라 축제를 포함하는 이탈리아 음악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베로나에 여름밤 아레나 오페라 축제가 있다면 로마에는 여름밤 카라칼라 축제가 있다. 카라칼라는 AD 217년에 건설된 대(大)목욕탕이다. 오랜 시간 유적으로 방치되어 오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하는 갈라 콘서트가 이곳에서 열리면서 유명해졌다. 사상 처음으로 세계 3대 테너인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가 함께한 콘서트였다.

필자를 포함 21명의 음악기행단은 7월 11일 카라칼라에서 로베르토 볼레(Roberto Bolle)와 친구들의 발레공연을 관람했다. 폐허가 된 목욕탕의 외벽을 무대로 활용한 여름밤의 공연은 5000여 명의 관람객과 함께한 1800여 년 전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로마 시내 밤하늘에 새겨진 별과 함께한 꿈같은 시간이었다. 이어진 일정은 모데나의 파바로티 박물관, 부세토의 베르디 생가와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방문이었다. 파바로티 박물관에서는 밀리언셀러인 1990년 카라칼라 공연 음반을 구매했다.

7월 15일 저녁,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오페라 ‘나부코’를 관람했다. VIP 입장권 구매로 레드카펫을 밟고 고대의 아레나로 들어가니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고 입장하는 검투사가 된 기분이었다. 3만 명을 수용하는 원형 계단과 무대장치의 규모는 장대함과 황홀함 그 자체였다. 밤 9시 시작된 공연은 새벽 1시경에 끝이 났다. 노예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이 바빌론 강가에서 부르는 ‘노예들의 합창’은 오페라의 하이라이트. 공연이 끝난 후의 앙코르가 아닌 공연 중의 앙코르 요청으로 합창은 연속 두 번이나 울렸다. 세기의 마에스트로 다니엘 오렌의 능숙한 퍼포먼스가 빛이 나는 순간이었다. 공연이 끝난 새벽 베로나의 카페와 술집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현재 건립 중인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부산을 먹여 살릴 ‘베로나의 아레나’가 되길 기대하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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