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외교문서 “조선인 폭동은 없었던 일… 책임 전가한 것”
요코하마 주재 총영사대리 보고서
“일본에 20년 이상 체류하고 있는 영국인 말에 따르면 (1923년) 9월 4일이나 5일에 조선인 한 명이 철사로 꽁꽁 묶여…. 그가 처참하게 죽을 때까지 죄어지는 것을 실제로 봤다고 한다.”
일본 요코하마 주재 영국 영사관의 로버트 볼터(Boulter) 총영사 대리가 1923년 12월 19일에 작성한 ‘1923년 9월 1일 요코하마의 지진·화재 및 그 후의 경과에 대한 보고’다.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한 기록이 담겨 있는 문서다. 이 내용은 지난 30일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 등이 주최한 ‘관동 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정영환 일본 메이지가쿠인대 교수가 발표문 ‘관동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부정론 비판’을 통해 소개했다.
볼터의 보고는 “또 다른 사람은 기둥에 묶여 죽을 때까지 날카로운 죽창으로 찔리고 있었다고 한다”며 “그것을 저지른 사람은 25세가량 일본인으로, 경찰관은 보고 있었지만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일본 내 학살 부정론을 대표하는 책인 구도 미요코의 ‘관동 대진재 조선인 학살의 진실’(2009)에 인용된 영국 측 외교 문서를 검토하면서 이 자료를 찾아냈다. 구도의 악의적 편집과 왜곡과는 달리 당시 영국 문서는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인 지하철 전문가인 존 도티는 볼터에게 보낸 보고에서 “9월 3일 요코하마항에 내리자 총으로 무장한 자경단이 ‘조선인으로 오인받지 않도록 오른팔에 흰색이나 녹색 띠를 두르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어 “택시를 타고 있는 사이에 몇 차례나 자경단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차를 세웠다”며 “칼이나 날카로운 죽창, 머스킷총으로 무장했고 매우 흥분해 공포에 가득 찬 젊은이들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계속 ‘조선인이다’라고 외치며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했다는 것이다.
학살의 원인에 대해 영국 문서는 ‘조선인의 폭동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도티는 “일본에서 일어난 모든 무질서와 잔학 행위를 조선인이나 볼셰비키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지진 직후부터 황당무계한 소문이 유포돼 자경단의 눈에 띈 조선인들은 곧바로 살해됐다”고 했다.
도쿄 주재 영국 영사 대리 맥레이는 “일본인은 노동시장에서 조선인과 경쟁하는 데 분개하고 있어서, 흥분과 혼란이 만연하는 가운데 일본인 일부는 외국인을 배제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영국 외교 당국의 공식 입장은 “조선인의 활동에 대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확산됐고, 보복으로 많은 조선인이 살해됐다”(1924년 1월 로널드 맥닐 외무정무 차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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