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김민재 같은 수비수 없소?”… 한국 수비수 줄줄이 유럽행
축구에서 중앙 수비수는 팀의 대들보와 같다. 수비할 땐 냉철한 판단력으로 상대 공격을 끊어야 하고, 공격에선 최후방에서 앞으로 공을 보내는 컨트롤 타워 역할도 해야 한다. 11명이 유기적으로 수비하게 만들기 위해 선수들을 질책하고 다독이는 리더십도 필수다. 파올로 말디니(55·이탈리아)나 카를레스 푸욜(45·스페인)처럼 주장으로 활약한 중앙 수비수가 많은 이유다.
그래서 아시아 중앙 수비수에게 유럽의 벽은 높았다. 일단 언어 때문에 말로 지시하기 힘들고, 키나 덩치가 유럽 선수들보다 작아 대인 방어도 애를 먹었다. 5년 넘게 유럽에서 살아남은 아시아 중앙 수비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사우샘프턴에서 8시즌을 뛴 요시다 마야(35·일본), EPL 맨시티에서 활약한 쑨지하이(46·중국) 등이었다. 한국 선수로는 그동안 강철(2001년), 심재원(2001~2002년), 홍정호(2013~2016년)정도가 센터백으로 유럽에서 뛰었다. 그런데 김민재(27·2021년~현재)가 나타나자 판도가 달라졌다.
김민재 이전 드물던 한국 중앙수비수 유럽행은 김민재 이후 올해만 4명이다. 최근 석 달 동안 성남FC에서 뛰던 김지수(19)가 지난 6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브렌트퍼드와 계약한 걸 필두로 FC서울 이한범(21)이 지난 28일 조규성(25)이 있는 덴마크 미트윌란에 합류했고, 영등포공고 이예찬(18)은 포르투갈 포르티모넨스의 러브콜을 받아 메디컬 테스트를 마쳤다. 정식 계약을 앞두고 있다. 셋 다 180㎝ 넘는 키 덕분에 몸싸움에 능하고, 그라운드 곳곳에 패스를 뿌릴 줄 안다는 장점을 지녔다. 중앙 수비수를 소화할 수 있는 왼쪽 측면 수비수 황인택(20)도 지난 25일 수원 삼성에서 포르투갈 이스토릴 프라이아로 둥지를 옮겼다.
김민재가 2021년 튀르키예 페네르바체에서 유럽 무대를 처음 밟은 뒤 빠르게 성장해 2년 만에 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 구단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하자 “한국 중앙 수비수도 유럽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인식이 퍼진 덕분이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김민재를 통해 ‘한국에도 원석이 있구나’라고 느낀 유럽 구단이 많았다”며 “혼자 활약으로 한국 수비수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은 것”이라고 했다.
한국 대표팀이 세계 무대에서 거둔 연이은 성과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A대표팀이 2022 FIFA(국제축구연맹) 카타르 월드컵 16강, 연령별 대표팀이 2023 아르헨티나 U-20(20세 이하) 월드컵 4강에 연달아 진출하자 유럽 스카우트들은 한국에 눈을 돌렸다. 김지수는 U-20 월드컵 4강 주역이기도 하다. 이예찬을 지도했던 김재웅 영등포공고 감독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8월 초 대통령 금배 때부터 포르투갈 스카우트들이 예찬이를 지켜봤다”며 “요즘엔 유럽 구단에서 한국 고교 축구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중동에서 일으킨 ‘이적 시장 인플레이션’도 영향을 미쳤다. 올여름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 리그가 국부 펀드를 등에 업고 천문학적 금액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사들이면서 유럽 선수들 몸값이 치솟았다. 그러자 자본력이 부족한 유럽 팀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어디서든 전 세계 축구 선수들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 외국어 실력도 좋아졌다. 요즘 유소년 선수들은 영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김지수도 고교 때 유럽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어를 꾸준히 익혔다고 한다.
유럽에 나란히 진출한 이들 중앙수비수의 우선 임무는 기량을 빨리 끌어올리는 것이다. 가능성을 보고 한 투자라 팀 주요 전력에 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 김지수는 현재 2군 격인 브렌트퍼드 B팀에서 뛰면서 1군 승격을 노리고 있다. 이한범은 폴란드 바르샤바와 유럽 유로파콘퍼런스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 원정 경기에 동행했지만, 출전은 미지수다. 이예찬은 계약을 마치면 팀에 합류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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