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있는 예술인, 부산 등지지 않게…이 빈 자리 후원할 기업 어디 없나요
- 공공 의존도 낮추고 재원 다원화
- 문화예술지원의 민간 후원 주목
- 기업 41곳 참여 부산메세나협회
- 국·시비 매칭펀드 사업에 주력
- 작년 3억여 원, 올해 6억여 원
- 지역 예술단체 39곳에 힘 보태
- 미술전시·음악공연 집중돼 한계
- 개별 예술인에도 혜택 돌아가야
#1. 부산 금정구 주택가에 2년 전 작은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청년 작가 전시공간인 제이무브먼트 스페이스&갤러리다. 갤러리 주인은 한 기업가. 교수 중심의 운영위원회를 따로 두고 전시장이 필요한 젊은 작가들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이곳을 거친 작가는 벌써 20명이 넘었다. 갤러리 주인은 “작가에게 더 관심을 쏟아달라”며 앞에 나서지 않고 전시비용과 모든 운영비를 책임지고 있다.
#2. 동의대 동의음악치료학회는 이달부터 다문화가정이나 취약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 ‘드림 이즈 나우(Dream is Now)’를 새롭게 시작했다. 한국말이 서툰 아이에게는 한국어 노래를, 취약계층 아이에게는 악기를 가르쳐 마음 건강을 지원한다. 연말엔 음악회 무대에 올려 성공적인 공연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사업비는 지역기업 지비라이트가 후원하고, 이에 부산메세나협회가 보조금을 매칭했다.
부산에서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인 ‘메세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지역 문화예술은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하는 공공지원에 크게 기대왔다. 특히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은 창작지원에서도 중앙 의존도가 심화하는 추세다. 문예진흥기금은 말라가고, 정부 예술지원 정책도 변화하는 가운데 메세나는 지역문화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단비’가 될 수 있다. 그 현황·방향·과제를 2회에 걸쳐 짚어 본다.
▮ 문화예술, 민간 참여·지원 높여야
지속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만들려면 공공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술 지원의 수요와 다양성은 증가하는데, 공공 재원은 한정된 데다 범위가 제한적이다. 공공 예산에만 의존하기엔 지원할 예술가는 많고, 시민의 문화 갈증은 심하다.
여기에 최근의 정책은 순수·기초예술보다 산업적 측면에 기우는 양상이다. 지난 29일 발표한 내년 정부 예산안만 보더라도 산업 성격이 강한 ‘K-콘텐츠’에 대해 전방위적인 지원책을 쏟아냈다. 버추얼 스튜디오 신설, OTT전문인력 양성 등을 포함해 올해 8000억 원 수준이던 K-콘텐츠 정책금융을 1조8000억 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문화예술 시장이 작은 비수도권 도시들의 소외감은 더하다. 예술인 육성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역량 있는 젊은 예술인은 계속 서울로 빠져나간다. 문화예술 플랜비 이승욱 대표는 “기초예술 분야는 상업성은 떨어지지만, 예술문화의 기저를 형성한다. 상업영화의 많은 배우가 연극판에서 길러진다”며 “최근 정책 방향이 문화 산업화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지역 예술계에 그늘진 곳이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고 염려했다.
▮ 부산도 메세나 꿈틀
이렇다 보니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재원의 다원화 방안으로 민간 후원이 주목받는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메세나 활동이 회복되고 있다. 한국메세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2073억4400만원으로, 코로나 확산 직전인 2019년(2081억4400만원) 수준에 근접했다.
부산에서는 출범 3년 차를 맞은 부산메세나협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문화예술과 지역경제의 상생발전을 위해 2021년 12월,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설립됐다. 백정호 초대 회장의 동성그룹을 포함해 현재 41개 회원사가 참여한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로 예술단체나 프로젝트에 지정기부를 하거나 예술단체와 기업이 결연하는 ‘예술지원 매칭펀드’가 주요 사업이다. 올해부터는 부산문화재단이 해오던 부산 시비보조금 매칭펀드 사업도 이관해 오면서 예산 규모와 지원 단체가 늘었다.
매칭 규모를 보면, 지난해에는 26개 단체에 국고보조금 3억 원과 기업지원금 3억6800만 원을, 올해는 25개 예술단체에 국고보조금 3억 원, 기업지원금 4억2300만 원을 지원했다. 시비로는 14개 예술단체에 시비보조금 1억1500만 원, 기업지원금 1억8800만 원이 전달됐다.
도시 규모에 비해 늦게 시작한 만큼 외연 확장에 적극적이다. 매칭사업을 늘려가는 한편 문화시설이나 교육기관을 유치하는 일에도 나설 예정이다. 부산메세나협회 김흥수 사무처장은 “지역의 메세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내년에는 연간 예산이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며 “매칭사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지역 문화 인프라를 만드는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초에는 부산의 학계·상공·예술인 등이 참여한 부산예술후원회도 발족했다. 초대 명예회장은 허남식 신라대 총장(전 부산시장)이 맡았다.
▮ 미술에 높아진 관심, 후원으로 연결
미술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특히 시각예술 부문 메세나가 활발한 모습이다. 먼저 부산시립미술관을 후원하는 ㈔비마엔(BMAN)이 재작년 새롭게 설립됐다. 센텀의료재단, 태광, 동성케미컬, 코렌스 등이 참여하는 이 후원회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현대미술 거장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작품 ‘코트(The Coat)’를 기증해 관심을 모았다. 이 작품은 그해 부산시립미술관 국제기획전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Ⅲ_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 전에 전시됐던 작품이다.
8년 차에 접어든 부산미술관회도 조직 규모를 키우면서 미술관 프로그램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회원 수를 이전 30~40명에서 100명 이상으로 몸집을 불렸고, 프로그램 개발비 명목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000만 원을 미술관에 전달했다. 이 돈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안에 부산시립미술관을 짓고, 아이들이 시공간 제약 없이 어린이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인다.
부산비엔날레 후원회도 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아래 만들어졌다. 올 연말 조직을 정비하고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 지역 예술가는 “아트페어 시장으로 미술계의 관심이 쏠리면서 10년, 20년 뒤 비엔날레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지역에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비엔날레 전용관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문화예술 후원 조직이 많이 생기는데 함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지만 꾸준히 후원하는 기업가들도 지역 예술인에게 큰힘이 되고 있다. 지난해 제이무브먼트 갤러리에서 전시한 김덕희 작가는 “전시 지원뿐만 아니라 운영위원들도 제자들과 함께 관람하러 와서 이야기 나눴던 경험이 좋았다”며 “젊은 작가들이 많은 힘을 받을 수 있다. 전시를 지원해준 분께 감사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덕희 작가는 최근 열린 부산시립미술관 청년작가 3인 전에도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 구매로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데서 시작해 작가에게 전시 공간과 작업실을 내어주고, 판매 활로까지 고민하는 등 물심양면 돕는 이들도 있다. 익명의 한 기업가는 “힘들던 시절 그림으로 내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작가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다”며 “역량 있는 작가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갈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 현장 체감은 아직… 시스템 갖춰야
부산에서도 메세나 운동이 꿈틀대지만, 문화예술 현장의 체감도는 아직 높지 않다. 일부 시각 예술이나 음악 공연같이 애호가가 많은 분야가 아니면 그저 ‘그림의 떡’이다. 정보력과 행정력도 한몫한다. 부산메세나협회가 지원한 사업 가운데 연극이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는 연극 분야가 극단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이정남 부산연극협회장은 “연주가나 화가 등 개별로 움직이는 예술인은 지원 공모사업에 발 빠르게 나서기 어려운 면이 있다. 메세나협회가 중간서비스 조직으로서 기업과 예술인이 만나 결연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예술단체가 기업에서 후원금을 받아오면 1대 1로 매칭해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애초 후원 기업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다”며 “평소 알고 지내는 기업가들이 후원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를 메세나라 할 수 있겠는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진정성 있는 메세나를 끌어내는 것이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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