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쉽게 변해가네♪ 데뷔 35주년, 여전히 청춘을 노래하는 ‘동물원’

윤수정 기자 2023. 9.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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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가네·거리에서·혜화동…
한국의 포크 전설 그룹 ‘동물원’
데뷔 35주년을 맞은 그룹 동물원 멤버 유준열, 박기영, 배영길(왼쪽부터). “동물원 1집 당시 유행은 울림이 강한 소리를 많이 쓰는 거였는데, 우린 담백한 소리를 써 신선하다고 호평받았다. 사실은 돈이 없어 리버브(울림 넣는 기계)를 못 썼던 거였다.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이태경 기자

포크록 그룹 동물원은 1988년 데뷔 초부터 ‘청춘을 노래하는 시인’이란 평이 뒤따랐다. ‘거리에서’ ‘변해가네’ ‘혜화동’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같은 노래엔 메마른 도시에서 느끼는 젊은이들의 방황과 아련한 슬픔이 스며 있다.

35년간 동물원의 이름을 이어온 3인 멤버(박기영, 유준열, 배영길)의 기억 속 데뷔 초 첫 평가는 좀 더 유쾌했다. 바로 ‘이대생을 위한 발라드’. “김창기가 작사·작곡한 ‘사랑의 썰물’(임지훈 노래)이 크게 히트한 걸 본 창완이 형(산울림)이 동물원 멤버에게 데모 음반을 달라 했어요. 1집 기초가 된 ‘거리에서’ ‘변해가네’ 등 20곡을 보냈는데, 이를 들은 후 이대 동문에게만 팔아도 1만장은 팔겠다 하더군요. 하하.”(박기영)

데뷔 음반 ‘거리에서’는 김창완의 예언보다 100배 불어난 ‘100만장’ 판매고를 기록했다. 김창완이 차린 음반사 타임레코딩에서 처음 선보인 대학생 엘리트 7인(김창기·박기영·김광석·박경찬·이성우·유준열·최형규) 포크록 그룹으로 화제를 모았고, 2집도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 등이 인기를 끌며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김광석이 그룹을 나가 전업 가수의 길을 걸었고, 다른 멤버들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음악과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시간이 흘러 멤버가 줄면서 원년 멤버인 박기영, 유준열에 데뷔 초부터 동물원 녹음 작업을 도운 배영길만 남아 지금의 3인 체제가 됐다.

보통은 이렇게 멤버가 줄면 ‘해체’의 갈등을 불러왔을 것이다. 하지만 동물원 멤버들은 “우리 모체가 ‘술 친구’였기 때문에 갈등 없이 이런 형태로 음악을 계속 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신촌 이대 앞에 있던 ‘시작’ ‘필’ 등 기타 치고 노래하는 술집에 모여 서로 쓴 곡을 보여주고, 은근히 내공 대결을 펼치는 음악적 놀이 멤버가 동물원의 본래 모습이었죠. 시작부터 우리에게 ‘평생 가수만 하기’나 ‘대중 인기’ 등은 선택지에 없었어요. 지금보다 국내 음악시장이 작던 당시엔 그룹으로 평생 가수를 하는 선례도 거의 없었고요. 덕분에 멤버들이 팀을 나갈 때 큰 갈등도 없었고, 광석이도 3집, 4집, 5집 때 계속 음악적 교류를 함께했죠.”(유준열) “개인적으로 김광석은 진짜 ‘포크 그 자체’였다고 생각해요. 그의 삶도, 가사도, 공연도, 모든 것을 포크처럼 한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죠. 동물원은 그런 그의 하모니카 소리를 사랑했고, ‘소박하고 꾸밈 없는 소리’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그와 닮았어요.”(배영길)

멤버들은 2015년부터 박기영이 음악감독을 맡아 최근 9월 17일까지 재연을 시작한 뮤지컬 ‘다시, 동물원(초연 제목 그 여름, 동물원)’ 속 멤버들의 갈등 장면들도 “드라마적 요소를 위해 각색된 픽션”이라 했다. 동물원 멤버들의 데뷔 초 일화와 명곡 18곡을 뼈대로 만들어진 이 뮤지컬에선 동물원 원년 멤버 ‘김창기’와 ‘김광석’이 각각 ‘각자 인생에 대한 선택 존중’과 ‘진정한 가수의 길’을 대변하며 갈등을 빚는다. 이후 김창기는 세상을 떠난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넌 나의 흉터였어”라고 말한다.

멤버들은 “사실 광석이는 본래 솔로가수로 데뷔하려던 기획사가 연락두절 되면서 우연히 1집에 합류한 거였다. 이미 ‘광석이는 평생 가수할 애’란 공감대가 팀 내에 있었고, 가는 길을 달리 할 때 고민과 혼란은 당연히 있었지만 큰 싸움은 없었다”며 “다만 우리가 좀 더 격렬하고, 직설적인 성격들이었다면 뮤지컬처럼 싸웠을 수도 있겠단 상상은 해봤다”며 웃었다. 배영길은 “직장을 병행했고, 서로의 선택을 존중했기에 오히려 동물원은 순수하게 ‘상업적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으로만 음악을 대할 수 있었고, 오래 활동해 올 수 있던 것 같다”고 했다. “마치 좋아하는 장난감을 질리지 않고 오래 갖고 놀기 위해 일부러 잠시 곁에서 떨어트려 놨다가 다시 집기를 반복하는 어린아이 심정과도 같았죠.”(유준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멤버들은 ‘널 사랑하겠어’로 큰 성공을 거둔 1995년 동물원 6집 당시 “전업 가수의 길을 걸으며 광석이와 다시 ‘김현식과 신촌블루스’ 같은 형태로 함께할 계획을 그렸다”고 했다. 김광석 역시 서울 시청역 인근 세실극장에서 1000회 공연을 흥행시킨 때였다. “6집 음반에 (김)창기 아이디어로 ‘요즘 동물원 가보셨습니까?’란 문구를 넣었어요. 당시 유행하던 광고를 패러디한 건데, 우리도 이제 (광석이처럼) 전업 가수의 세계에 제대로 출사표를 내보자는 뜻이었죠. 만일 그런 일(1996년 김광석의 사망)이 없었다면…. 분명 함께 했겠죠.”

이들은 올해 데뷔 35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 대신 2일 오후 5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포크 포에버’ 무대에 오른다. 유리상자, 여행스케치 등 국내 대표 포크 그룹들과 함께 공연을 꾸렸다. “한 해 한 해 세월 가는 걸 세는 게 징그러워서 35주년인 걸 사실 까먹고 있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노래하는 포크”에서 찾기 때문이다. 박기영이 말했다. “1980년대만 해도 많은 가요가 선남 선녀의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를 주로 그렸어요. 반면 저희는 평범하다 못해 지질할 수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일상을 노래하고 싶었죠. 우리 노래의 주인이 당대를 살아간 청춘들의 일상인 셈입니다. 그런 일상이 계속 유지되고 존재하는 한, 동물원과 포크 음악은 계속 살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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