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03] 엉뚱한 발견
손님이 오셨다. 불을 켰더니 벽으로 휙 날아 앉는 품도, 다리 치켜세운 품도 바퀴벌레는 아닌 듯한데. 순간 흠칫한 게 멋쩍어 짐짓 딴전 피우다 보니 사라져버렸다. 풀벌레라면 집 안에서 찌르륵찌르륵 소리 내도 괜찮으리. 안 그래도 창문 다 열고 자기는 선득한 날씨. 가을은 창 밖에서 얼씬거리는데 이 손님 대체 어디로 갔나. 처음 봤을 때처럼 스스로 나타나면 ‘출현(出現)’이요, 여기저기 살피거나 들춰 찾아낸다면 ‘발견(發見)’이겠지.
‘지하철 유실물 센터는 승강장이나 객차에서 발견한 분실물로 그득하다.’ ‘발견’이 샛길로 빠졌다. 남이 아직 못 찾았거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낸다는 말이니까. 스코틀랜드 네스 호수에 산다는 전설 속 괴물을 찾을 때 어울린다. 승강장이나 객차가 무슨 호수라도 되나. 웬만하면 수많은 사람 눈에 쉽게 띄는 곳이니 발견은 합당치 않은 표현. ‘~에서 주운/습득한’ 해야 알맞다.
어느 방송에서 프로야구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을 분석하며 이렇게 말했다. “(득점이) 20점 넘는 경기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록을 찾기 어려운 오래전도 아니고, 늘 생중계하는 요즘 프로야구를 놓고 발견이라니. 그냥 ‘볼 수 있다’가 옳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 인상적인 대사를 발견했다.’ 대사는 극에서 배우가 하는 말. 대본이면 몰라도, 누구나 보고 듣는 연기를 어째서 발견한다 하는지. 더구나 드라마 역시 야구 경기처럼 세상에 다 드러나 있지 않은가. 이때는 ‘들었다’ 해야겠지. 심지어 문필가가 이렇게 쓰는 지경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말 쓰임새는 옳을지언정 ‘악성 외래종인 붉은불개미 발견’이나 ‘연락 끊긴 일가족 숨진 채 발견’ 같은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도 그만 발견됐으면…. ‘도심 하천에서도 천연기념물 수달 발견’이나 ‘항생제 내성균에 대항할 새 항생물질 발견’은 오죽 좋은가. 동해에서 대규모 유전(油田) 발견? 꿈이라도 달게 꾸자, 가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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