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의료 인공지능의 새로운 패러다임
인공지능(AI)은 의료에서 갈수록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의료는 인간의 생애 전주기에 걸쳐 심지어 태아 때부터 데이터를 측정하기 시작해 사망한 이후에도 문자 그대로 '자궁에서 무덤까지' 데이터를 측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더 나가 측정하는 데이터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더욱 다차원적인 데이터를 다루는 쪽으로 발전 중이다.
의료는 기본적으로 멀티모달(multi-modal)이다. 여기서 모달리티(modality)란 '양식' '양상'을 뜻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의료는 언어, 이미지, 소리, 그래프 등 다양한 방식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진료, 진단, 치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공지능은 언어, 이미지 등 주로 한 가지 모달리티에 대해서만 개발됐다. 지금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허가를 받은 거의 모든 인공지능이 그러하다.
하지만 의료의 궁극적 속성에 따라 인공지능도 결국 멀티모달로 발전해야 한다. 최근 기술발전에 따라 의료분야에서도 서서히 멀티모달 인공지능, 소위 '제너럴리스트' 의료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서 이런 '제너럴리스트' 의료 인공지능의 개념을 제시하며 이 같은 인공지능이 앞으로 갖춰야 할 3가지 조건을 내놓았다. 첫째, 처음 보는 문제라도 특별한 재학습 없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자, 이미지, 그래프 등 다양한 데이터 모달리티의 조합을 입력할 수 있고 출력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의학지식을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논문을 처음 접하고 SF영화에서나 보던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런 인공지능이 구현된다면 꿈같은 일이겠지만 아직은 기술적으로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도 개념만 제시했을 뿐 실질적으로 구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은 7월 말 구글이 '메드-팜 엠'(Med-PaLM M)이라는 인공지능을 발표했다. 이 인공지능은 '제너럴리스트' 의료 인공지능에 대해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준 첫 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인공지능은 추가로 파인튜닝이나 재학습 없이 하나의 모델만으로 14가지 다양한 의학적 과업을 다양한 모달리티에 걸쳐 수행할 수 있다. 영상의학과 영상이나 피부과 이미지를 분류하고 영상의학과 리포트를 만들거나 요약하기, 영상의학과 및 병리과 영상에 기반해 질문에 답하기, 심지어 간단한 유전정보 분석까지도 성공적으로 해낸다. 이런 과업에 대해 예시를 하나, 혹은 몇 개만 보여주거나 심지어는 예시를 보여주지 않아도 기존 발표된 최고 성능의 인공지능과 비슷하거나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
더 나가 메드-팜 엠은 학습과정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류의 질문도 성공적으로 해석해내는 창발(emergent ability)을 보여준다. 흉부엑스레이 영상에서 결핵을 찾아내는 방법을 따로 학습하지 않았음에도 이 문제에 대해 기존 최고 성능의 인공지능과 거의 근접한 수준의 정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영상의학과 이미지를 해석하는 리포트를 만드는 능력을 인간 영상의학과 의사의 리포트와 비교해보기도 했다. 246개 흉부엑스레이 영상에 대해 평가자들은 약 40%의 경우 메드-팜 엠이 만든 리포트를 더 선호했다.
멀티모달 의료 인공지능의 출현은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최근 의료 인공지능의 발전을 볼 때마다 SF영화를 보는 듯한 야릇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것은 더이상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이다. 의료분야의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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