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간토대학살 100년

채희창 2023. 9. 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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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진도 7.9의 대지진이 간토(關東·관동) 지방을 덮쳐 1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2017년 5월 각의에서 "간토대지진 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과 관련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고 확정했다.

간토대학살은 일본 가해의 역사 중에서 실상이 철저히 가려진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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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힌 조선인 24명을 13명 한 무리와 11명 한 무리로 하여 철삿줄로 묶은 후 갈고리로 쳐 죽여 바다에 던져 넣어버렸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자가 있어서 다시 갈고리로 머리를 찍었는데, 너무 깊이 박혀 몇 개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그 외 3명의 조선인은 활활 타고 있는 석탄 코크스 불 속에 산 채로 한꺼번에 던져 넣었다.”(‘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강덕상 1975년)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진도 7.9의 대지진이 간토(關東·관동) 지방을 덮쳐 1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이 극심한 혼란기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돼 무고한 조선인들이 일본 군경과 자경단에 의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일본어를 시켜보고 발음이 서툴면 바로 죽이는가 하면, 시신을 강에 던지고, 두 살 난 아이도 살해했다. 이 끔찍한 사건이 간토대학살이다. 한·일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선인 희생자는 6661명이다. 유대인 학살에 못지않은 최악의 범죄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진상 공개와 사과는커녕 학살 사실마저 부인하고 있다. 2017년 5월 각의에서 “간토대지진 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과 관련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고 확정했다. 정부가 사건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도쿄도지사가 매년 9월1일 조선인 추도식에 보내던 추도문도 2017년부터 중단했다. 그제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조사한 데 한정한다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얼버무렸다.

간토대학살은 일본 가해의 역사 중에서 실상이 철저히 가려진 사례다. 일본 역사와 국회 발언 등에 엄연히 기록된 학살을 부정하는 것은 문명국가로서 무책임한 처사다. 외면한다고 역사가 지워지겠나. 오늘은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는 날이다. 일본 정부는 이제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해야 한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한·일 관계를 다짐하지 않았던가. 진정성 있는 화해를 해야만 양국이 미래로 나갈 수 있다. 역사에는 소멸시효가 없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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