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분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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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화가 날 때마다 주변 사람에게 주먹을 휘둘러 댄다고 해서 이것을 간헐적폭발장애라고 진단하지 않는다.
돈 때문에 가족을 살해하고, 치정에 얽혀 불을 지르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눈에 거슬린다고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대는 행동은 분노조절장애가 아니라 범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왜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라는 단어가 던지는 반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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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팍팍해도 나아질 거란 희망을 잊지 말아야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뉴스에서 연일 공포를 다룬다. 무고한 타인을 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을 두고 그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라거나 정신질환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설명해선 안 된다. 은둔형 외톨이였다든지, 반복된 좌절 경험이 범죄자에게 있었다는 등으로 심리화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이건 도덕과 윤리가 결여된 것이며 잔혹한 범죄행위일 따름이다.
뉴스에서는 충격적인 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분노조절장애를 습관처럼 연결지어 말하곤 한다. 범죄자가 실제로 그 정신질환(정확한 진단명칭은 간헐적폭발장애다)을 앓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왜 이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라는 단어가 던지는 반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테다.
선량한 사람은 정당한 분노라도 그걸 표현하고 나면 ‘조금만 참을 걸’하고 후회한다. 마음 약한 이는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 않았을까?’라며 자신을 돌아보고 ‘더 참지 못한 내 잘못이다’라며 자책한다. 자기 행동으로 타인이 고통받을 것 같다고 예상되면 스스로 조절하는 게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회를 향한 선한 믿음이 사라진 세상에는 분노가 역병처럼 퍼진다.
누구나 실수한다. 의도치 않게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상과 달리 현실은 공평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이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타인의 작은 실수쯤은 눈감고 지나간다. 나도 그럴 수 있으니까. 억울한 일을 당해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 다음에는 나아지겠지’라며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신뢰가 사라진 세상에서는 ‘이 사람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이러는 것 아니냐!’라며 타인의 의도를 나쁘게 해석하게 된다. ‘나만 이렇게 당하고 사는 것 아니야!’하며 의심한다. 배신당한 경험이 쌓이면 ‘나 이외에는 아무도 믿어서는 안 돼’라는 불신이 자란다. 불신은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내야 한다’는 믿음을 부른다. 화를 냄으로써 타인과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고, 억울하다고 느낄 때마다 분노로 그 상황을 해결하려고 들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새 분노에 중독되고 만다.
어렵게 대학에 입학해서 비싼 등록금 벌려고 밤잠 줄여가며 아르바이트하고 스펙까지 쌓아 졸업했는데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나가라’는 통보받고 실업자가 된다면, 때마다 꼬박꼬박 세금 내며 살았는데 재난이 생겨도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럴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금이 가고 그곳에서 분노라는 감정이 자란다.
현실이 비록 팍팍해 보이더라도, 세상에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누군가를 향해 분노가 피어오르면 마음속에 떠올려 보자. ‘그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과 딸’이라는 것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또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리고 비록 현실에 허점이 많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떠올리자.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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