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책·읽·기] 삶이 비틀거릴지라도 … 눈물로 쓴 소설가의 기도

김진형 2023. 9.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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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출신 한수산 순례 에세이
세 번 도전 끝에 백두산서 세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최양업 신부 삶 되짚는 여로
중국·마카오·필리핀 성지 취재
과거 기록 검증… 인간 삶 고찰
▲ 한수산 작가는 지난 2008년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종지인 중국 마찌아즈 동산 천주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아래 사진은 눈 덮인 고원 속 마찌아즈로 가는 길.

소설가 한수산은 천주교 신자가 되기 위해 세 번 도전했다. 첫 교리 공부는 두 달 만에 무너졌다. 신문에 연재 중인 소설이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1981년 국군 보안사에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하는 ‘한수산 필화 사건’을 겪었던 것이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자만심이 남아 참회와 재생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한·중 수교도 되지 않았던 1989년 우연치 않은 기회로 천주교 신자들과 중국 여행을 떠났고, 결국 백두산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신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세례를 받은 날 드린 첫 기도는 삶이 비틀거릴지라도, 믿음만은 비틀거리지 않게 지켜 달라는 간절함이었다.

인제 출신 한수산 소설가가 순례 에세이 ‘내가 떠난 새벽길’을 펴냈다. ‘소설가 한수산’보다는 ‘천주교 신자 한수산’의 글로 읽힌다. 작가는 고백한다. 천주교에 관한 글은 세 배는 어렵고, 글에서 나오는 수입은 3분의 1도 안 된다. 그렇지만 글이 완성됐을 때 자신에게 주는 기쁨은 세 배를 넘어 무한대를 헤아린다.

▲ 내가 떠난 새벽길/ 한수산

한 작가는 초대 조선대목구장(교구장)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와 ‘땀의 순교자’ 최양업(1821∼1861) 신부가 걸었던 여정을 따라간다. 2008년 4월 2일부터 6일까지 중국 베이징, 시완쯔, 마찌아즈 등을 순례하며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더듬고, 이후 마카오와 필리핀 롤롬보이로 이어지는 최양업 신부의 새벽길을 떠난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선교회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조선 선교를 위해 길을 떠난 순례자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해 중국을 횡단하는 4년간의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조선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열병에 시달리다 내몽골에서 선종했다.

주교가 베이징에서 조선 선교를 준비하며 보낼 때 쓴 일기에는 “지금부터 이곳에서 영원히 머물 것처럼 일하면서 곧 떠날 것처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주교는 자신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면서도 길을 떠났고, 조선 신자들을 위한 글을 남겼다.

“조선에 도착하면, 우리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 삶을 바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 성사를 거행하고 조선인들을 사제로 서품할 것입니다.”

주교의 여정은 얼핏 실패로 보일 수 있겠지만 작가는 그가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믿음은 마침내 모방 신부에게로 이어져 한국인 사제 김대건·최양업을 탄생시킨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선종한 마찌아즈 묘소를 방문하고 동산 천주당(성당)으로 들어간 신앙인 한수산은 눈물로 다시 기도한다. “이제야, 주교님을 만나다니 저에게 이 만남은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저만큼 보이는 이 나이에 주교님의 생애가 말해 주는 이 장엄한 가르침을 안다 한들, 이렇게 때늦어서 제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1836년 압록강을 건너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로 떠난 신학생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의 여정에 대한 실증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과거의 기록을 재구성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이어간다. 불성실한 역사 고증과 추측은 꾸짖고, 사람과 공간을 기억한다. 마카오 취재 여행 일정도 세 소년이 도착한 ‘6월 7일’로 맞췄다.

홀로 압록강을 통해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 최양업 신부에 대한 애정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작가는 16세에 처음 압록강을 건넜던 최양업 신부를 두고, “시대가 인간을 만드는가 싶었다. 편리함이 넘치는 환경 속에서, 더러는 과보호로 유약해졌을지 모르는 오늘의 열여섯 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수산 작가는 최양업 신부에 대한 작품도 새롭게 집필 중이다. 그 이면에는 지난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간이 있다. 작가는 “어쩌면 그분의 생애를 그리게 될 내 소설은 백조의 노래가 되거나 미완성의 유필이 될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한편 한수산 작가는 오는 6일 한림대 도헌학술원이 마련한 ‘시민지성 한림연단’ 강연에 참여, 시민들을 만난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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