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64. 예술가와 후원가

이광택 2023. 9. 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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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사람보다 제대로 쓴 사람 빛을 발하는 이치
동서양 막론 예술가에 대한 후원 다수
재능 있지만 가정 형편에 활동 포기 많아
‘후원’ 모든 예술가 삶의 여정서 중요 지도
전세계 미술영재들 꿈 향해 약동 희망
▲ 이광택 작, ‘봄비 여행’(2022)

이소영의 책 ‘하루 한 장, 인생 그림’에서 헬레네 세르프벡(1862∼1946)이라는 핀란드 화가를 알게 되었다. 한 국가의 사회 시스템, 그리고 개인의 후원이 얼마만큼 그 나라 문화의 지도를 바꾸고 예술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헬레네 세르프벡은 네 살 때 집 앞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평생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게 된다. 등교조차 어려워져 집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술에 재능이 있음이 알려져 열한 살에 특별 장학생으로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한다. 불행은 겹으로 오듯 2년 뒤 아버지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가정형편이 더욱 어려워져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그때 독일 출신의 아돌프 폰 베커라는 후원자가 나타나 그가 운영하는 미술아카데미의 수업료를 면제해 주고 특출한 예술혼이 꺼지지 않도록 공부를 계속하게 도와준다. 또한 핀란드 정부는 장학금을 준다. 그 덕분에 세르프벡은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오랫동안 여행하며 미술 선진국의 다양한 화풍을 익히고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하게 된다. 유럽이라 하지만 변방 중의 변방이며 인구도 무척 적은 핀란드가 그렇게 오래전부터 문화에 깊은 관심을 쏟다니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예술가에 대한 후원은 동양에도 많았다.

오하라(大原) 미술관. 일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市)에 있으며 1930년 일본의 서양화가 고지마 토라지로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일본 최초의 서양화 전문 미술관이다. 미술품 수장가이자 패트런으로 잘 알려진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는 고지마 토라지로의 예술적 재능과 미술에 임하는 겸손한 태도를 높게 평가해 고지마를 세 번씩이나 유럽에 유학시켜 준 후원자인데, 서양화를 전공했음에도 유럽에는 발을 디뎌 보지도 못하고 1년 열두 달 365일, 애면글면 돈 걱정하며 살아 나가야 하는 나로서는 그저 한없이 부럽기만 한 이야기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 것은 우리나라 근대에도 훌륭한 후원자가 있었다는 사실! 단우(丹宇) 이용문(李容汶). 그는 고종 때 내부협판을 지내며 많은 서화가를 도와주었다. 특히 이당 김은호와 소정 변관식을 일본에 유학시켜 준 후견인이었다. 한국인이라면 대개 잘 알듯이 이당과 소정 역시 한국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고등학교 미술반 후배 중에 중등미술 교사로 근무하는 후배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안타까운 이야기를 그들에게서 들었다. 그것은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도중에 많은 학생이 미술 활동을 그만둔다는 이야기였는데, 시골 지역에 있는 학교일수록 더하다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이요, 교육 정책도 어느 선진국에 뒤지지 않게 비약적으로 발전한 21세기의 한국에서 왜 제2, 제3의 헬레네 세르프벡이나 고지마 토라지로, 김은호와 변관식이라는 대가가 만들어지지 못할까.

흔히 예술가와 후원자의 관계를 동전의 앞뒤와 같다고 한다. 새겨진 문양은 다르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뚱이의 다른 이름이라는 얘기이다. 정말이지 후원은 모든 예술가가 삶의 여정에서 종착지까지 가지고 가야 할 가장 중요한 지도와 같은 것일 수 있다.



“가장 올바르게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생(生)을 느낀 사람”이라고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말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돈을 제대로 쓴 사람이 당대는 물론 후대에 빛을 발하는 게 당연한 이치라는 뜻이겠다. 그래서인지 패트런, 즉 후원자라는 말을 입안에서 웅얼거리면 마치 오 헨리의 소설들을 읽은 뒤처럼 가슴이 훈훈해진다. 부디 이후에 여기 소개하는 내 작품 안의 봄날 물고기처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미술 영재들이 모두 희망을 향해 약동하는, 그래서 자신만의 멋진 꿈의 세상을 맘껏 펼치기를 바란다. 서양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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