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성열]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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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재판이 길어지면 비용 등 소송 당사자의 부담이 커지고 범죄 피해자 구제도 늦어질 수 있는 만큼 법원에 '신속히 재판할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취임한 이후 재판 지연은 더 심각해졌다.
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비판을 우려해 재판 지연을 바로잡지 못하고, 판사들 사이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확산된 것도 재판 지연 만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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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 재판 의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도 여럿 있다. 먼저 민사소송법은 소 제기 5개월 이내에 선고토록 하고 있다. 1981년 시행된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형사소송 1심은 기소일부터 6개월 이내, 항소심과 상고심은 재판부가 기록을 송부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하지만 사법 현장에선 이들 규정이 오래전부터 사문화되며 재판이 지연돼 왔다. 판사가 재판을 느릿느릿 진행해도 별다른 제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선언적 규정인 탓에 원피고와 피고인들은 신속 재판을 강제할 권리도, 재판 지연을 배상받을 방법도 없다. 헌법재판소마저 1999년 민사소송법 5개월 선고 조항을 강제성이 없는 ‘훈시 규정’으로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에는 “판결의 선고는 변론을 종결한 기일에 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따로 선고기일을 지정할 수 있다”(318조의 4)는 규정도 있다. ‘즉일선고’ 원칙을 담은 조항으로 변론 종결과 검찰 구형이 이뤄지는 결심공판 때 가급적 판결까지 내리라는 취지다. 즉일선고를 할 땐 유무죄 여부와 형량만 선고하고 판결문은 나중에 작성해도 된다.
하지만 즉일선고 원칙 역시 거의 구현되지 않는다. 별도 기일을 잡아 판결하는 걸 형사소송법은 ‘특별한 사정’으로 국한했지만, 현장에선 어느새 관행처럼 정착됐다. 법원행정처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1심 판결 피고인 23만3490명 가운데 즉일선고를 받은 이는 1만1202명에 불과했다. 피고인 100명 중 5명 정도만 즉일선고를 받은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취임한 이후 재판 지연은 더 심각해졌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폐지 등 이른바 ‘사법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판사에게 동기를 부여할 요인이 사라졌고, 유능한 법관들이 속속 떠났기 때문이다. 민사합의부의 1심 처리 기간은 2014년 252.3일에서 2021년 364.1일로 늘었고, 1년 이상 미제 사건은 12만 건(2021년 기준)에 육박한다. 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비판을 우려해 재판 지연을 바로잡지 못하고, 판사들 사이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확산된 것도 재판 지연 만연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법조인들은 ‘김명수 체제’의 부작용 때문에 재판 지연 문제가 한층 심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대법원장이 바뀌더라도 지금처럼 신속 재판을 강제하는 법이 없으면 재판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긴 힘들 것이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도 독일과 일본처럼 재판 지연을 규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뜻을 주변에 밝혀 왔다고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듯 신속 재판은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정부와 국회도 차기 대법원장과 협력하며 신속 재판 관련 입법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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