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실패에…쿠데타 반긴 가봉 국민들

손우성 기자 2023. 8. 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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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 대통령 일가 56년 독재 종식…군부, 권력 장악 속도
“정치인 탐욕이 원인” 분석 속 군의 정치 개입엔 우려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30일(현지시간) 병사들이 브리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을 헹가래치면서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알리 봉고온딤바(봉고) 가봉 대통령 3연임에 반발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가봉 군부가 30일(현지시간) ‘과도기 국가기관 재건위원회’ 의장을 선출하는 등 권력 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 56년간 이어진 봉고 대통령 일가의 권력 독점이 깨지자 가봉 전역은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잇따라 발생한 쿠데타는 결국 민주주의를 뿌리내리지 못한 기성 정치인들의 탐욕 때문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아프리카 인권운동가이자 나이지리아 전 상원의원인 셰후 사니는 이날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지금부터 우리는 ‘왜 아프리카에서 또 쿠데타가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멈추고, ‘왜 민주주의는 실패했는가’라는 물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프리카에서 전염병처럼 번진 쿠데타의 원인은 바로 정치인들”이라며 “그들은 규칙 준수를 거부했고, 체계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봉은 봉고 대통령 3연임을 놓고 심한 진통을 겪었다. 가봉 정부는 허위 정보를 막겠다며 대선 막판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고 야간 통행도 금지했다. 일부 선거구에선 참관인 없이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각종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봉고 대통령이 64.2%의 득표율로 승리했다는 발표를 강행했다.

영국 가디언은 “가봉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대단히 뜨거운 국가”라며 “비록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개혁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변해야 한다는 욕구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직 부자 세습과 호화 생활도 쿠데타를 부추긴 원인으로 꼽힌다. 봉고 대통령 아버지인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은 1967년부터 2009년 사망할 때까지 42년간 가봉을 통치했다. 봉고 대통령은 아버지에 이어 14년 동안 정권을 잡았다. 야권 인사들을 잔혹하게 탄압했고 반대 목소리엔 귀를 닫았다.

그사이 아프리카 대표 산유국인 가봉의 부는 봉고 대통령 일가에게 집중됐다. 이들은 프랑스에 저택을 보유하고 고급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등 방탕한 생활을 이어왔다. 영국 BBC는 “약 230만명인 가봉 국민 대부분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쿠데타 소식이 알려지자 가봉 주요 도시에선 군부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가디언은 “이번 쿠데타는 수십년간 ‘봉고 왕조’가 저지른 잘못된 통치와 부패, 노골적인 정치 조작의 결과”라면서 “군부는 대중의 탄탄한 지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표면적으론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도 가봉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사니 전 의원은 WP에 “적도기니와 콩고공화국, 카메룬 정상들도 수십년 동안 집권했다”며 “가봉의 이웃 국가 모두 민주주의 정착에 크게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선을 치른 시에라리온과 짐바브웨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서부 및 중앙 아프리카에서는 2020년 이후 말리, 기니, 부르키나파소, 차드, 니제르 등에서 도미노처럼 쿠데타가 이어져 가봉까지 포함하면 벌써 8번째다.

BBC는 특히 이번 가봉에서의 군부 쿠데타가 2021년 9월 기니 쿠데타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기니에선 당시 무리한 개헌으로 3연임에 성공한 알파 콩데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고 마마디 둠부야 대령이 이끄는 군정이 권력을 장악했다.

가봉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군부는 재빠르게 쿠데타 후속 조처에 나섰다. 군부는 이날 가봉 국영 방송을 통해 “브리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을 만장일치로 재건위원회 의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은구마 장군은 2020년부터 대통령을 경호하는 공화국 수비대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그는 쿠데타 성공 이후 프랑스 르몽드와 인터뷰하면서 “봉고 대통령은 3연임을 할 권리가 없다”며 “쿠데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프리카 기성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고 해도 군부가 무력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모든 당사자가 자제력을 발휘하고 의미 있는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며 “법치와 인권이 온전히 존중되도록 요청한다”고 밝혔다.

군부에 의해 가택 연금된 봉고 대통령은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지지자들은 목소리를 높여달라”고 호소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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