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버틴 ‘장애인 체육 요람’ 폐관 위기
국내 첫 복지시설 ‘정립회관’
소아마비협회 부채로 자금난
프로그램 중단·임금 체불 중
“여기가 1975년에 개관을 했는데 제가 10대 시절 개관식에 참석도 했거든요. 옛날에는 운동장도 있어서 목발 짚고 축구도 하고 그랬는데 많이 바뀌었죠.”
서울 광진구에 있는 장애인 복지·체육 시설 ‘정립회관’은 소아마비 장애인인 김덕윤씨(63)와 ‘50년’을 함께한 곳이다.
개관 당시 정립회관은 서울시내 장애를 가진 중·고등학생들이 셔틀버스를 타고 와 학교에서 못했던 체육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장애인탁구 서울시 대표 선수인 김씨에게 정립회관은 여전히 ‘유일무이한’ 훈련 장소다. 국내 최초 장애인 복지시설인 정립회관은 장애 친화적인 운동시설이 종합적으로 갖춰져 있어 ‘장애인 스포츠의 요람’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정립회관이 큰 위기를 맞았다.
상위 기관인 한국소아마비협회의 또 다른 산하 시설인 ‘정립전자’가 마스크 사업에 실패하면서 진 40억원 상당의 부채를 정립회관이 일부 떠안게 됐다. 정립회관은 외부 강사 급여 지급 등이 어려워 운영하던 체육·문화 프로그램을 대부분 중단했다. 지난 7월엔 직원들의 급여도 체불했다. 셔틀버스도 약 두 달 전부터 운행이 중지됐다.
탁구장과 바둑실, 체육관 등은 정립회관 직원이나 이용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관리를 하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사정이 더 어려워져 ‘전기와 수도가 끊기면’ 운동을 아예 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직원과 이용자들은 한 달 전부터 매일 오전 8시 정립회관에 있는 협회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30일 기자가 찾은 집회 현장엔 휠체어 장애인 20여명을 포함해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한 이용자는 집회 도중 “우리도 운동이 하고 싶습니다!”라고 외쳤다.
장애인 이용자들은 대화와 소통에 전혀 나서지 않는 협회의 태도가 불안과 우려를 증폭시켰다고 했다. 협회 측은 지난해 12월 비대위를 꾸리고 사태 수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시설을 운영하고 이용해온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협회가 수익사업을 하기 위해 “돈이 안 되는” 일부 시설을 정리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협회 “정상화에 최선” 불구
이용자들 “아무런 소통 없어”
한 달째 협회 앞에서 집회
협회 측은 이러한 이용자들의 요구가 ‘선동’에 의한 것이라며 되레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협회는 보도설명자료에서 “현 법인 이사회와 비대위는 추가적인 압류 추심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사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폐업으로 시설이 비어 있는 정립전자 건물의 임대를 통해 채무를 상환하고, 정립회관의 체육관과 수영장을 ‘전문 장애인 체육시설’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임대 계획과 시설 운영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이용자들은 “대화를 하려면 우리하고 직접 해야지 왜 보도자료를 먼저 내냐”며 협회 태도에 불만을 표현했다.
김덕윤씨는 정립회관이 앞으로도 ‘장애인 체육의 요람’으로 남길 바란다고 했다. “비장애인은 일상에서 걸어 다니면서도 운동이 어느 정도 되지만 장애인은 그게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장애가 있을수록 운동을 더 신경 써서 해야 해요. 근데 장애인은 이렇게 종합적으로 다 경험해보고 자기한테 맞는 운동을 찾을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정립회관의 의미가 큰 거고 꼭 지켜져야죠.”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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