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당한 자국민 추모조차 안 하는 정부를 신뢰하겠나”
“일 정부 학살 자료 은폐 급급
양국 협력 이뤄지지 않을 듯
젊은 세대에게 정보 제공 등
시민단체들이 나설 수밖에”
대학생 때 선배의 제안으로
‘희생자 유골’ 발굴 시작 계기
증거 좇고 추모 활동에 몰두
40년.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봉선화)의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64)가 간토대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일해온 기간이다. 그가 생면부지의 조선인들을 위한 활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대학 4학년이던 1982년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 묻혀 있는 희생자들 유골을 발굴해보자’는 선배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어린 시절 자주 놀던 아름다운 강변이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곳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바꿔놓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니시자키 이사는 지금까지 대학살의 흔적을 좇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활동에 투신해왔다. 추도비 건립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중학교 교사직까지 그만두고, 극우단체의 추도비 공격을 우려해 그 옆에서 7년 넘게 생활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대학살에 대한 1100건의 증언을 모은 자료집을 펴냈다.
그는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를 움직이려면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노력이 줄기차게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지난 29일 e메일을 통해 이뤄진 인터뷰 전문.
- 왜 간토대학살 문제에 집중하게 됐나.
“간토대학살은 재난 가운데 많은 사람의 목숨을 일방적으로 앗아간 끔찍한 사건이다. 당시 화재가 심했던 도쿄 아사쿠사나 쓰키시마 등에선 조선인을 불태워 살해하기도 했고, 오시마 등에서는 조선인 여성의 음부에 죽창을 찌르는 잔혹한 사건도 있었다. 일본에선 계속 숨겨져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인데도 나 역시 이를 전혀 몰랐다. 그 문제를 알았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진실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 진상규명 활동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에 의해 사건이 철저히 은폐됐기 때문에 남겨진 공적 사료가 거의 없다. 현재까지도 희생자 수, 희생자 성명, 유골의 행방 등 중요한 정보를 거의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도 공적 사료가 남아 있지 않거나 숨겨져 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 일본 정부는 대학살 증거나 자료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짓말이다. 학살 증거나 사료들이 방위성 방위연구소나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 등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그간 밝혀진 바 있다.”
- 자료가 공개되면 어떤 점들을 밝힐 수 있을까.
“희생자 수나 성명, 유골의 행방 등이 일정 정도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친 소식을 궁금해하는 유족들이 아직도 있다. 적어도 그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
- 한국 정부의 진상규명 노력은 충분하다고 보나.
“함께 활동하는 재일교포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자국민이 학살당한 사건을 조사하고 추모하지 않는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 한·일 간 진상규명 협력도 가능할까.
“한·일 간 협력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학살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이기에 진상규명에 협조할 리 없다.”
- 많은 일본인들이 이 문제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간토대학살 문제를 알리지 못하도록 해왔기에 국민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교과서 등을 봐도 간토대학살에 관한 기술은 미흡하고 학생들은 진실을 알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조선인이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고, 자경단이 죽인 것은 정당방위였다’는 일부 우익 누리꾼들의 논조가 힘을 얻고 있다.”
- 간토대학살은 그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보다 관심이 적은 측면도 있었다.
“일제강점기보다 이른 시기에 간토 지방에 한정해서 일어나 한반도까지 정보가 전해지기 힘들었던 것 아닐까 한다. 한국에선 거의 사료를 찾아볼 수 없고 연구도 진행되지 않았다. 기본적 사실에 대한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한국 정부도 대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반면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 책임을 다할 의사가 없기에 사건의 은폐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편견과 폭력은 어떤 상황인가.
“현재도 증오 시위나 헤이트 스피치는 태연히 이뤄지고 있다. 단순한 협박에 그치지 않는다. 교토 우토로의 방화도 있지 않았나.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생겼지만 벌칙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 집권여당의 태도도 문제다. 일본 사회가 혐오 발언을 규제하려는 노력을 해왔다지만, 여당은 줄곧 그 반대의 움직임을 보여왔다.”
- 향후 활동에선 어떤 측면에 중점을 둘 생각인가.
“일본 정부나 도쿄도 등이 적극 이 문제를 조사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기에, 우리 같은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활동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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