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100년…일본은 책임 회피, 한국 정부 무관심
당시 ‘조직적 국가 범죄’ 기록에도
일본 정부 “사실 파악 안 돼” 발뺌
우리 정부는 진상규명 등에 소극적
무고한 조선인들이 무참히 희생된 간토대학살이 1일로 꼭 100년이 된다. 100년 동안 일본 정부는 한 번도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조차 진상규명이나 희생자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간토대학살의 진실은 사실상 방치돼왔다. 그나마 양국 시민단체, 역사학계 등 민간에서 힘들게 진상규명을 이어왔다.
1923년 9월1일 일본 도쿄를 포함한 간토 일대에 진도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도쿄의 44%가 소실될 정도로 괴멸 상태가 됐다. 지진 발생 한 시간쯤 뒤부터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등 유언비어가 퍼졌다. 이날 저녁부터 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이 시작됐다. 간토대학살은 재난 상황에서 이성을 잃은 시민들의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 국가 범죄였다. 유언비어를 단속해야 하는 일본 정부는 오히려 조장했다. 당시 고토 후미오 내무성 경보국장은 ‘조선인들의 방화로 힘든 상황이어서 계엄령을 내렸으니 엄중하게 단속하라’는 전보를 각 지방에 보냈다. 군인, 경찰, 자경단원들이 조선인들을 제압하고 학살에 가담했다. 중국인, 공산주의자들도 희생됐지만 조선인들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
“역사 직시해야” 일 언론도 쓴소리
‘독립신문’은 학살된 조선인 피해자들이 6661명이라고 보도했다. 약 750명으로 추산되는 중국인 피해자들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일제 만행 중에서도 간토대학살은 가려진 역사다. 일본이 100년 동안 책임을 발뺌하며 진실을 덮어왔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30일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만 했다.
그럼에도 간토지진 관련 기록은 끊임없이 발견돼왔다. 앞서 2012년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이 이전하는 과정에서 381명의 간토대지진 학살 피해자 명단이 발견되는 등 당시 기록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도쿄신문은 31일 “부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 역시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2014년 4월 ‘관동대지진 조선일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하는 등 국회 내 움직임이 있었지만 법안은 폐기됐고, 2015년과 2016년 나온 비슷한 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입장을 요구받고 “정부는 일본 측에 진상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 제공을 요청한 바 있다”면서 “앞으로도 정부 차원의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필요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간토대지진을 포함해 과거사 문제는 덮고 미래로 가자며 선제적 양보를 하고 일본을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일본은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정치인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박은경·박용하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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