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논콩 전략작물직불제’ 실패담
올해가 농사짓기 가장 나은 한 해일지도 모른다. 뚜렷해진 기후위기의 징후는 농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평야지대이자 곡창지대인 호남과 충남의 평야지역은 봄에는 가뭄과 산불로, 여름에는 집중호우로 농지가 잠겨버렸다. 수도작(水稻作), 즉 벼농사는 논에 물을 대 작물을 기르는 농사를 뜻한다. 그만큼 벼는 물을 좋아하고 잘 견디며 한반도에 적응해온 작물이다. 이번 큰비에 논이 푹 잠겼다가 물이 빠지자 쓰러진 벼를 보고 “제가 살 수 있겠다 싶으면 일어설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누워 있겄지” 했다던 충남 부여의 어느 마을 벼들은 살고자 일어나 이삭이 패기 시작했다. 기특하고 신통하다.
밥도 많이 안 먹는데 덮어놓고 심지 말라며 쌀 감산 정책으로 돌아선 지 20여년. 여기에 수입쌀까지 들여오니 쌀은 넘쳐나 보인다. 하여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거부 안건이 ‘양곡관리법’일 정도로 쌀은 현 정부의 스트레스이자 천덕꾸러기다. 이전 정부에서도 쌀 말고는 식량자급률이 낮아 논에 콩, 보리, 밀, 감자, 사료작물을 심어 논의 활용도를 높이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논 활용(논 이모작)직불제’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아예 쌀을 심지 말고 정부가 지정한 ‘전략작물’을 심으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 정책을 내세웠다. 밀을 심거나 쌀빵의 원료인 가루쌀(분질미), 가공 영역에서 쓰임이 많은 콩, 가축들을 먹일 조사료를 전략작물로 지정했다. 그중 장류·두부·콩나물 등 용처가 많은 콩의 자급률은 고작 23.7%에 불과해 논콩을 적극 권했다. 여기에 밥만큼이나 빵도 많이 먹으니 밥쌀 대신 제빵용 가루쌀 농사도 지어보라 했다.
여기에 더해 농어촌공사로부터 농지를 임차하려면 쌀 대신 전략작물을 심는 것이 의무조항이다. 이에 농사 규모를 키우려는 농민이나 농지 공공임대로 농사를 지으려는 신규 청년농민들도 논콩을 심었다. 그런데 콩이 한창 자라야 할 때 집중호우가 있었고 콩을 심은 논이 잠겨버렸다. 콩은 습해에 약한 작물로 뿌리가 물에 잠기면 소출은커녕 그대로 썩어버리기 때문에 물빠짐이 중요하다.
하지만 논이란 본디 물을 가두는 기능이 있는 평평한 습지다. 이런 논에 정부가 시키는 대로 콩을 심어 큰 피해를 본 농민들이 논콩을 갈아엎고 정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혹자는 배수가 잘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직불금을 바라고 논콩을 심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다. 하지만 쌀농사로 건질 돈도 없는 데다 국가 땅을 얻어 농사를 지으려면 논콩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당 100만원이 책정된 직불금은 논콩이나 가루쌀 모두 같은데 논작물인 가루쌀을 심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자못 논리적인 반박도 나온다.
하나 가루쌀은 농민들에게 길러본 적 없는 낯선 작물이고, 개인 농가가 가루쌀 모종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또 국산 밀도 남아돌아 골치건만 가루쌀이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정부가 팔아준다 약속했다가 엎어버린 작목이 그간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콩 콤바인이나 파종기 같은 값비싼 농기계 지원도 있다는데 논콩을 택할 이유가 차고 넘쳤다.
사달이 나자 정부는 논콩 수해 농가에도 약속했던 직불금과 수해위로금을 지급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논콩을 갈아엎고 빈 논에서 건질 것도 없으니 소득도 없다. 쌀이라도 심었으면 식구들 양식거리는 건지지 않았겠느냐며 쌀마저 사 먹게 되었다고 피해 농민은 한숨을 내쉰다. 기후위기의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버린 지금, 식량자급률을 올리는 일은 1~2년 안에 이룰 수 없다. 쌀의 감산 성과를 보이려 배수 기반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밀어붙인 논콩 농사는 현재로서는 전략적 실패다. 칠갑산 산마루에서 배적삼이 흠뻑 젖도록 콩밭을 아낙네가 어찌 맸겠는가. 적어도 물 빠진 비탈밭에서 콩은 자라기 때문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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