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말아야

기자 2023. 8. 3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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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조법 제2조 및 제3조 개정법률안이 9월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이 법률안의 필요성에 대해 야당들이 적극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러나 이념을 동원한 시대착오적인 국민 분열 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노동계를 지목해온 윤석열 정부는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어 또 다른 정치적 대치가 예상된다.

이번 노조법 개정 법률안은 노조법상 ‘사용자’와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노조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에서 개별 책임원칙을 명시하고, 노조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신원 보증인에게는 면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노동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근로자 정의 조항의 확대가 누락되고, 개별 조합원이나 단순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면책 등 쟁의로 인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데 필요한 주요 내용들이 사용자의 재산권 침해 등의 주장에 밀려 반영되지 않아 당초 요구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수준이다.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불법파업으로 규정돼 해고된 노동자와 가족들은 사용자와 경찰 등으로부터 감당하기 힘든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그에 결부된 가압류에 시달렸다. 게다가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마저 봉쇄되는 등 열악한 상황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거나 질병 악화로 목숨을 잃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노란봉투법’ 입법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문명국가에서는 수용되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실은 이번 노란봉투법이 위헌적 요소가 있고 노사관계의 혼란과 경제위기를 촉발한다는 이유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러나 입법과정에서 상당히 후퇴한 노조법 개정 법률안은 민주복지국가형 경제질서를 표방해온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헌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을 포기시키는 방편으로 감당불가능한 손해배상을 가압류라는 채권담보 수단과 결부해 국가가 강제하고 실질적 지배력을 갖는 사용자를 단체교섭과 쟁의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현재의 노조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명문화하고 국가에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부여한 헌법 정신과 조화되기 힘든 상태이다.

현행 노조법은 노사의 자율 교섭보다는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방적으로 친기업적이다. 이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공존·공영하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통해 해결하도록 한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처럼 잘못 인식돼 있다. 하지만 현대 민주공화국의 보편적 원리는 국민 대표기관인 의회가 법률의 형식으로 국가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권이 이를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권력분립의 원칙’이다.

의회의 입법권이 헌법에 위반되거나 집행 불가능성, 국익 불합치성, 부당한 정치적 압력, 다른 국가권력의 권한 침해수단으로서의 오용 가능성 등이 있을 때 입법을 제지하는 소극적인 통제권으로 도입된 것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다. 거부권은 국가정책의 적극적 형성권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위헌성과 같이 그 행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가 있을 때 국가권력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공화 관계를 실현한다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이번 노란봉투법과 같이 현행 노조법의 위헌적 요소를 제거하고, 헌법상 경제질서에 대한 헌법 제정자의 기본적 결단을 충실히 실현하기 위한 입법의 경우에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할 수 있는 헌법적 사유를 찾을 수 없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부당하다.

특히 입법에 대한 소극적 통제권인 거부권 행사는 정당화 사유 외에도 주권자인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수반해야 그나마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여론 동향은 대통령이 노동기본권의 적극적 보장정책을 뒷받침하는 국회의 입법권을 무산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의 압도적 지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헌법과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전향적 이해와 모든 사회계층의 공존·공생·공영의 민주공화국을 구축하기 위한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고 적극 수용하길 촉구한다. 그게 헌법정신과 입법권을 존중하는 길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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