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클래머스강에서 사라진 것은

기자 2023. 8. 3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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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철거는 당파적인 이슈가 아니다.” 2019년 미국 오리건주 지역 신문에 실린 기고문 제목이다. 기고자는 14년 동안 오리건주 공화당 상원의원으로 재직했던 정치인 출신 영화감독이다.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클래머스강에 위치한 4개의 댐을 철거하는 클래머스 댐 철거 사업이 합의되어 추진되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반대에 부딪히자 공화당 출신 정치인이 직접 중재하고 나선 것이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클래머스강 복원 사업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댐 철거 프로젝트다. 클래머스강에 있는 4개의 댐은 수질이 악화돼 독성 남조류가 자라고, 연어 등에 기생충이 번성해 어업에 악영향을 끼쳐왔다. 4개의 대형 댐을 철거하기 위한 초당적 노력은 부시 행정부 시절 성사돼 오바마 행정부로 이어지며 2018년에 철거될 예정이었다. 이해관계자가 걸려 있는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강 복원 역시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자 한국의 상황이 겹쳐보인다.

한국에서 ‘강’은 미국보다도 훨씬 더 치열한 정치적 이슈다. 한강 개발과 청계천 복원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한 이명박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4대강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전쟁 폐허 위에서 사회적 인프라를 건설하고 초고속 성장을 이어오다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시점에서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성장’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담아낸 마지막 한 방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적 명운을 걸다시피 하면서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이다보니 시행과정에서도, 사업이 끝나고 정권이 바뀐 후 복원 논의과정에서도 진통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4대강 사업은 최근까지 다섯 번의 감사원 감사를 받았고, 감사 결과가 발표되자 국가물관리위원회는 4대강 보 해체 계획을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 삭제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신규댐 건설과 준설을 추진해야 한다는 정치적 메시지는 강력해졌고, 2024년 예산안에도 반영됐다.

하지만 한국의 댐 건설은 이미 포화상태라 건설 적지도 거의 없지만, 당장 댐을 몇개 더 짓고 준설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이 같은 기조는 지속될 수 없다. 담수생태계 붕괴를 막고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용도가 상실되거나 노후되어 편익보다 비용이 큰 댐을 철거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설득하고 보상해야 할 구체적인 이해관계자는 존재하겠지만 강 복원 그 자체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다. 한국도 잠시 주춤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은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강 복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클래머스강 복원 사업의 첫 번째 대상지인 콥코2댐의 철거가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나머지 3개의 댐도 내년까지 철거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지역사회는 클래머스강 복원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환경 복원은 원주민 부족에게 혜택이 될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다. 클래머스강에서 사라진 것은 댐뿐만은 아닐 것이다. 댐 철거에 대한 지역사회의 불안과 편견을 과학과 소통을 통해서 넘어서는 과정이었다. 오랜 시간 지난했지만 드디어 결실을 맺고 있다. 시민의 지지가 있다면 시간이 걸려도 강은 흐른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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