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의 우리문화 들배지기] 예술은 예술로 재자
이중섭(1916~1956)의 국적은 다섯 개다. 나무위키에는 일본제국(1916~1945), 소련(1945~1946), 북조선인민위원회(1946~1948), 북한(1948~1950), 대한민국(1950~1956)으로 명시해놓고 있다. 임군홍(1912~1979)도 마찬가지다. 다만 6·25전쟁 와중에 월남을 하거나 월북을 한 것이 정반대의 행보다.
‘정전 70주년 기념 - 화가 임군홍’ 전시(예화랑, 2023년 7월27일~9월26일)는 거듭 색의 노래다. 둔탁하리만큼 깊고 두꺼운, 그러나 선명한 흑백과 컬러로 인물·산수·꽃을 그려낸다. 식민지와 전쟁의 암흑세계를 응시하면서도 그 이면의 빛을 관조해내고 있다. ‘자화상’이나 중국 한커우에서 그린 ‘상처받은 여인상’ ‘행려’가 어둠 속의 빛이라면 ‘동백꽃’ ‘해바라기’ ‘자금성각루풍경’ ‘석양’ ‘산과 하늘’이나 ‘아내의 초상’ ‘여인좌상’ ‘잠든 아들 모습’ ‘보살상’은 반대로 다가온다.
임군홍의 그림에서 빛과 그림자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빛 속에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 속에 빛이 있다. ‘한복 입은 여인’이 왼팔을 의자 뒤에 딱 걸치고 정면을 응시하는 자태에서 어둠을 대하는 당당함과 에너지가 배어나온다. ‘가을 들녘’은 빼앗긴 하늘과 산, 들판을 일필휘지로 유희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지점은 작가의 순수 영혼과 따뜻한 마음이 대상에 깊이 용해되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임군홍의 작품은 대상 재현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희망으로 돌려내는 내면 표출에 방점이 찍힌다. 야수파와 같은 외래의 유화기법을 자유자재로 내 것으로 소화시켜내면서도 전통의 필묵사의(筆墨寫意)를 유화사의로 주체적으로 도약시켰다.
이런 경우는 이중섭의 ‘소’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특히 황소의 힘줄 같은 거칠고 강한 필획이 국망과 전쟁의 아픔을 민족의 이름으로 극복하고 있다. 나라가 망했다고 예술까지 망한 것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임군홍과 같은 폭압시대 대자유의 그림언어가 ‘빨갱이’로 낙인찍혀 20세기 한국 미술 역사에서 금기시된 것도 모자라 망각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임군홍의 ‘가족’을 다시 보면 우리 모두의 가족이 된다. 남한에서 6·25전쟁 통에 그린 마지막 작품인 데다 그것도 미완이다. 세상 모르고 잠자는 아들 덕진이, 아들을 품고 먼 곳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부인,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큰딸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하지만 이들 가족이 70년 동안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곳은 어디인가. 아버지의 발소리와 남편의 모습이다. 그래서 바로 아버지가 다시 오는 날이 그림이 완성되고, 진정한 통일이 된다.
이중섭, 임군홍과 같은 월남, 월북 작가 행보의 첫발자국은 5개의 국적이 증거하듯 작가 개인보다 정치적 상황에 의해 결정되었다. 예술이 망국과 분단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친일과 반일 역시 정치 잣대로 예술을 잰 결과이다.
그림 속 엄마 품의 아기 덕진이는 지금 70대 중반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그림 앞에 섰다. “틀과 규격에 얽매이지 않으며, 화풍도 대담한” 대자유의 그림언어로 전쟁 너머를 그려낸 사람을 아버지로 기억한다. 지금이야말로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그것도 격(格)을 최우선으로 재야 할 때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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