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87) 뚝섬 나루터와 영동대교
두 사진은 1971년과 2023년의 한강변 풍경이다. 먼저 1971년의 빛바랜 흑백 사진을 보면,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강기슭에 크고 작은 배가 정박해 있다. 가운데 보이는 ‘청담 5호’라는 배에는 목적지가 크게 적혀 있는데, ‘봉은사’이다. 배들 뒤로 보이는 다리는 영동대교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영동대교는 영동지구 개발을 위해 1970년 착공하여, 서울 한강의 7번째 다리로 1973년 개통되었다. 따라서 이 사진은 한창 다리가 건설 중일 때여서, 공사에 사용된 크레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영동(永東)’이란 명칭은 영등포의 동쪽 지역이라는 뜻으로,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 지금의 ‘강남(江南)’을 대신하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이 다리의 가설로, 현재 한국의 첨단 업무지역이자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삼성동과 청담동 일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71년 사진은 한강 북쪽에 있던 뚝섬 나루터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나루터는 특히 조선시대부터 봉은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봉은사 구경을 가는 시인 묵객이나 불공을 드리러 가는 한양 도성의 부녀자들이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강 남쪽에 있던 청숫골 나루터로 건너갔다. 이 뱃길은 영동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1964년 신문 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500여명의 시민이 두 나루터를 이용해 도강하였다. 또 청담, 삼성, 대치동 일대의 밭에서 기른 채소가 이곳을 통해 배로 운반되어 동대문시장에 팔렸다. 1972년 대장경 번역작업을 위해 배로 봉은사로 가던 법정 스님은 신사 숙녀는 물론이고, 승용차, 소가 끄는 수레, 분뇨 트럭까지 함께 실은 나룻배의 모습에서 모든 걸 포용하는 부처님의 자비심을 연상하였다.
2023년 사진을 보면, 그 기능을 상실한 뚝섬 나루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모래와 자갈밭이 넓게 펼쳐져 있던 둔치의 모습도 1980년대 한강 종합개발 사업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둔치는 나무와 갈대로 덮여 있지만, 그 아래는 콘크리트 제방으로 도배돼 있어 강에 바로 접근하기 어려워졌다. 영동대교 뒤로는 위층에 자동차, 아래층에 지하철 7호선이 다니는 복층 다리인 청담대교의 모습도 보인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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