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고령사회 재정의 지속 가능성 해법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2023. 8. 3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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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나이 또래 중에 늙어서 자식 덕 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 중에도 나중에 노부모를 봉양하겠다는 기특한 마음을 가진 청년은 찾기 힘들다. 지금도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우리 세대가 더 나이 들었을 때 자식이 우리를 봉양하는 모습은 도통 그려지지 않는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왜 이렇게 되었을까? 충효를 으뜸 가치로 삼았던 유교의 가르침이 오늘날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도 한 이유일 수 있겠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다.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노후 시기가 너무 길어졌다는 점이다. 과거 환갑잔치를 크게 벌였던 것은 그 나이까지 사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력이 쇠해서 자식에게 의지할 때까지 사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그렇더라도 오래지 않아 세상을 등졌기 때문에 부모 봉양 기간이 길지 않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몇 년이면 몰라도 수십년 부모를 모실 자식은 옛날에도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왜 있었겠는가.

두 번째는 개인의 노후보장에 국가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노인부양 책임이 거의 전적으로 가족에게 있었지만, 이제는 상당 부분 국가 책임이 됐다. 아마 설문조사를 하면 가족보다 국가 책임이 더 크다는 응답이 많을 것이다.

세 번째는 재산축적과 금융 발달로 근로시기에 스스로 노후대비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스스로 노후를 대비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장성한 내가 부모를 모시면, 다시 내 자식이 성년이 되어 늙은 나를 부양하는 식으로 노후대비가 이뤄졌다.

두 번째 이유인 노후대비의 국가 책임 확대는 연금제도를 낳았다. 흔히 연금을 두고 ‘세대 간 계약’이란 표현을 쓴다. 이는 과거 가족 내에서 ‘조부모-부모-자식’으로 이어지는 부양 방식이 현대에 와서 사회 전체의 ‘노인세대-근로세대-미성년세대’ 간 부양으로 바뀐 것을 뜻한다. 즉 ‘내가 부모를 부양하면, 나중에 내 자식이 나를 부양한다’는 약속이 ‘현 근로세대인 우리가 노인세대를 부양하면, 우리가 나이 들어 노인세대가 되었을 때 그때의 근로세대가 우리를 부양한다’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연금제도는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노후대비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노후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다만 우리는 4분의 1가량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축에 든다).

한편 첫 번째 이유인 ‘길어진 노년’, 즉 고령화는 저출생과 맞물려 전통적인 연금제도에 위기를 초래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간이라도 부모를 수십년 모시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생판 남남끼리인 세대 간 부양이야 오죽하겠는가.

지금 근로세대는 노인 한 명 부양 비용을 4명이 나눠 내면 된다. 하지만 미래의 근로세대는 각자가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 부담이 네 배가 되는 것인데, 이런 부당 계약을 받아들이겠는가. 게다가 계약서 작성하고 도장을 찍는 것도 아닌 그저 사회제도에 불과한 것이며, 법만 개정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연금개혁을 고민하는 근본적 이유도 이대로면 고령화로 인해 미래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야 고민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앞서 연금제도가 정착됐고, 한발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나라들은 이미 연금개혁을 끝마쳤다. 대표적인 나라가 흔히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21세기가 시작되기 전에 연금개혁을 해냈다. 고령화를 대비하는 연금개혁은,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든 본질은 부담을 늘리거나 혜택을 줄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반길 리 없다. 그래서 연금개혁을 추진하다 정권이 바뀐 나라도 있다. 이런 와중에 기존의 틀 자체를 확 바꾸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덕에 ‘세기의 개혁’이라고 불리며 많은 정치가와 전문가의 찬사를 받았다.

스웨덴 연금개혁의 핵심은 각 세대가 낸 것만큼 받는다는 것이다. 기존 연금제도는 세대 간 부양, 즉 현재 근로세대는 현재 노인세대를 부양하고, 미래 근로세대는 미래 노인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세대별로 근로시기 저축을 통해 노후소득을 마련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앞서 제기한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세 번째 이유, 즉 ‘스스로 노후대비 가능’이 사회 전체로 확산된 것이다. 자기 세대에 쓸 것은 자기 세대가 벌어서 충당하면 인구 구조가 어떻게 변하든 세대별로 부담과 혜택은 같아진다. 세대 간에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서 계약 파기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따지고 보면 자기 세대에 쓸 만큼 자기 세대가 부담하는 것은 세대 간 계약을 지속하기 위한 암묵적 약속이기도 하다. ‘미성년-성년-노인’ 3세대의 인구 비중이 일정한 상태에선 과거·현재·미래에 성년세대가 노인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지는 부담이 유사하다. 결국 자기 세대가 쓸 만큼 자기 세대가 부담하는 셈이다. 세대 간 인구 비중 변화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니 문제가 된 것이다.

스웨덴 개혁 이후 많은 나라에서 연금개혁이 이어졌다. 스웨덴처럼 자기 세대가 쓸 것은 자기 세대가 마련하는 쪽으로 틀을 바꾼 나라도 있다. 혹은 기존의 세대 간 계약 틀은 유지하되, 각 세대의 혜택이 각 세대가 진 부담만큼 되도록 조정한 나라도 있다. ‘자기 세대 쓸 것, 자기 세대 마련’ 원칙만 지키면 고령사회라도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고령사회 대응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게 쉽지는 않다. 기존의 낸 것보다 훨씬 많이 받는 연금을, 낸 만큼 받도록 고치자는 것도 반대가 심하다. 하물며 미리 기금을 적립할 수도 없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기초연금 등 일반재정(조세)이 재원인 각종 사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기술적으로 까다롭고 정치적으로도 설득이 쉽지 않다.

다시 말하지만, 내 나이 또래 중에 나중에 자식 덕 보겠다는 부모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쓸 것은, 자식 세대에게 떠넘기지 말고 우리가 마련하자는 데에 반대할 기성세대도 드물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정서와 의지가 이렇다면, 이를 제대로 반영하는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은 정치와 행정의 몫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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