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이전 강행에 “분열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정부” 쏟아진 비판
육군사관학교가 31일 교내 충무관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외부로 이전하고 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 등은 육사 교정 내 장소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자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도를 넘은 갈라치기”라고 반발했다. “공산주의가 활개 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시작된 이념전쟁의 불똥이 독립운동의 역사에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흉상 이전 결정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국방부의 역사의식 부족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이 분열을 정치적 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장군의 생애를 연구해 온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통화에서 “홍 장군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붙여 흉상을 철거한다는 것은 인간적 도리가 아니다”라며 “독립운동 서훈을 받은 의병 출신들은 성리학자들인데, 왕정을 추구했던 군국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 배척해야 하느냐”고 했다. 또 “이회영 선생과 김좌진 장군은 아나키스트”라면서 “공산주의가 아닌 아나키즘은 윤석열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맞냐”고 했다.
독립운동 단체들도 흉상 이전을 비판했다. 한동건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너무 처참하다”면서 “국군의 역사를 1948년부터로 만들려고 이전에 독립운동한 분들의 공적을 없애려 하다가, 저항이 거세지니 이념과 색깔로 접근한 것”이라며 “홍 장군이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것도 아니고 독립운동의 외피로서 공산당원 생활을 한 것인데 여기에 공산당 딱지를 덧입혀서 쫓아냈다”고 했다.
민성진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 사무총장은 윤석열 정부가 홍 장군 자리를 백선엽 장군으로 대체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 장군 친일 행적 삭제까지 흐름에서 정권의 의도가 보인다”면서 “친일 문제는 지우고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낡은 대결 구도로 덮으려는 계획”이라고 했다.
육사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한 사무총장은 “이번 조치로 ‘육사는 죽었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있어야 국군이고, 간부를 키워내는 엘리트 교육기관이지 자기 역사를 부정하는 학교에 무슨 권위가 있고 역할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 친일파의 학교가 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군인 정신을 길러내는 곳이 맥아더를 대변하고 백선엽을 대변하는 게 말이 되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역사학계는 국방부가 보인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홍 장군의 흉상을 철거·이전해야 하는 이유로 ‘자유시 참변 연관 의혹’과 ‘봉오동·청산리 전투에 빨치산으로 참가했다는 의혹’,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논란’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의혹과 논란만 적시했을 뿐 역사학계나 교육계 의견 등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29일 “군 내부적으로 판단해서 결론내려질 수 있으면 굳이 외부 학계와 협의는 필요없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사실을 체크하고 정확한 해석과 평가가 필요한데 기초적인 단계서부터 (국방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이어 “인물 평가는 학자들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며 “이렇게 쉽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문제시되지 않던 홍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은 윤석열 정부가 ‘만들어낸 논쟁’이라고 했다. 민 사무총장은 “홍 장군을 둘러싼 논란은 이전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라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같은 이슈를 갈라치기로 덮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정치적 전략에 독립운동가를 사용한다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번 논란을 보면 대통령이 갈라치기를 선거 전략으로 사용하겠다고 오래전에 확정한 것 같다”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에도 맞지 않고, 분열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윤 대통령의 극우적 세계관이 전면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매우 다르다”면서 “적법 절차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다르게 대통령은 검사 시절 별건 수사도 아무렇지 않게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의)정치는 언제나 타협하고 국민과 공존해야 하는데, 배제하는 방식의 정치는 심각한 위험”이라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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