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이위안, 상반기 손실 9조원 육박 … 디폴트 위기 고조

이귀전 2023. 8. 3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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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부동산發 ‘경제 암운’
회사측 “상황 악화 땐 채무불이행 위험”
진행 중인 프로젝트 숫자만 헝다의 4배
막아야 할 채권 총액 2조8700억원 달해
무디스, 비구이위안 신용등급 Ca로 하향
부동산 업계 부실, 신탁 산업에 악영향
‘중국판 리먼 사태’ 현실로 닥칠 가능성
韓 “수출시장 비상” “단기적 충격” 전망

중국 부동산 위기의 뇌관으로 여겨지는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이 올해 상반기 기록적인 손실을 발표하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 업계 부실이 ‘그림자 금융’ 등에 영향을 미쳐 기업 디폴트 우려가 확산하면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세계 경제 성장의 약 40%를 차지하는 중국의 침체가 미칠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의 대형 민간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은 지난 30일 공시를 통해 올해 상반기에 489억위안(약 8조9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해 하반기에는 67억위안(1조2000억원)의 순손실을, 상반기에는 6억1200만위안(1100억원)의 순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중국 대형 건설사 비구이위안이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 건설한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지난 16일 전경. 비구이위안은 올해 상반기 489억위안(약 8조9000억원)이라는 대규모 손실을 내며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졌다. 조호르바루=로이터연합뉴스
비구이위안은 상반기 기록적인 손실에 “깊이 반성한다”며 “재무 상황이 계속 악화할 경우 채무불이행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비구이위안이 계속기업으로서 회사의 존속 가능성에 중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본질적 불확실성’(material uncertainties)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날 비구이위안 신용 등급을 Caa1에서 Ca로 세 단계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투기성이 매우 높고, 디폴트에 근접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비구이위안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 수는 2019년 디폴트 위기를 맞은 헝다(에버그란데)의 약 4배에 이른다.

비구이위안이 막아야 할 채권 총액은 157억200만위안(2조8700억원)으로, 9월 초 39억위안짜리 채권을 시작으로 10월, 연말, 내년 초까지 만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8월 7일 지불하지 못해 3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진 달러 채권 2종 이자(2250만달러)의 시한 역시 9월 초다.

부동산 업계의 위기는 오랜 기간 자금 조달원 역할을 해온 신탁산업으로 확산해 금융 안정성에 타격을 줄 수 있다.

금융그룹 중즈그룹의 계열사인 중룽신탁은 최근 수십 개 투자신탁 상품의 이자 지급 및 원금 환매를 중단했다. 최근 만기가 된 상품의 투자자들에게 현금 상환을 하지 못했고 10여개 이상 상품에 대한 지급도 연기한 상태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신탁산업의 손실이 380억달러(50조2000억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림자 금융’ 관련 부실 우려가 고조되자 중국 당국은 최근 국영 시틱신탁과 CCB신탁 등 대형 금융회사 두 곳에 중룽국제신탁의 회계 장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융규제관리 당국은 위험도를 조사하기 위한 실무그룹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과 신탁 기업들의 디폴트 위기가 중국 내 경제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도 크다.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는 0.3% 하락해 2년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고용마저 타격을 받으면서 16∼24살 청년실업률은 6월 21.3%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중국 정부는 공개를 중단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이날 발표한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7로 5개월 연속 50 아래로 떨어지며 경기 수축 국면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경제 침체의 주요 이유로는 ‘공동부유’와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 때리기’로 대표되는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기업 압박·단속 정책이 꼽힌다. 정부가 설정한 ‘5.0% 안팎 성장’ 목표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크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 중국의 침체는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중국의 경제 문제를 언급하면서 ‘시한폭탄’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다만 파급력의 정도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채권 운용사 핌코의 티파니 와일딩 상무는 “중국은 여전히 세계의 제조 공장으로 중국 경제 약세와 물가 하락이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중국에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미국이 중국 위기에 노출되는 정도는 놀라울 정도로 작을 것”이라며 “중국 경제위기로 원자재 수요가 줄어들 경우 인플레이션 완화 요인이 되는 만큼 미국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중국 경기 침체로 수출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수출경기 하락 사이클과 중국의 경기둔화 시기가 일치하고 있다”며 “특히 올해 이후 한국 수출과 중국 경기의 상관계수가 상승 전환되는 등 올해 경기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대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대응에 따라 단기적 충격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의도한 부동산 업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질서 있는 디폴트라는 점이 확인된다면 변동성은 단기에 그칠 전망”이라며 “기업들의 디폴트 속도가 정부의 의도대로 조절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안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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