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AI와 한국 제조업의 활로, 기회와 도전
◆AI 시대 제조업의 패러다임 변화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로 전 세계의 제조업은 새로운 전환의 압력을 받고 있다. 과연 AI가 가져온 산업환경은 제조업을 오래된 굴뚝산업으로 전락시켜 버릴 것인가? 아니면 제조업이 새롭게 부활할 기회로 다가올 것인가? 이에 대하여 국내외에서 많은 논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첫째, 인공지능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둘째, 인공지능과 전통 제조업을 어떻게 결합시켜 지속가능한 기술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산업화 시대에 각각 다른 경쟁력을 가졌던 국가들은 어떻게 국가전략을 전환하여 생존해 나가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이 존재한다.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국내외적 환경은 이 같은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많은 도전 요인과 가능성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국내의 정치사회적 환경은 물론이고 미-중 기술 전쟁의 국제정치 환경 하에서 한국이 가야할 길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조업을 어떻게 새로운 인공지능과 결합할 것인가에 따라 한국에게도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급격한 출산율 하락으로 인해 전 산업군에서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대도시와 떨어진 근무지와 열악한 근무환경 등으로 인해 젊은 층이 기피하는 산업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제조업 기피 현상은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닌 전통 제조 강국인 독일, 일본에서도 겪고 있는 현상이다. 미국 MIT공대와 보스턴 대학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독일, 일본, 한국 모두 고령화로 인한 제조업 노동력 부족을 심각하게 경험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화 및 로봇 활용이 증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자국 무역 보호 조치를 시작으로 바이든 정부의 탈 공조 (decoupling) 및 탈 리스크 (derisking) 전략 등은 세계 제조 무역 질서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있다. 최첨단 제조 분야인 반도체 분야의 경우 일본의 소재와 미국의 장비 연합으로 중국 반도체 성장에 대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고, 중국은 갈륨, 게르마늄과 같은 반도체 천연자원 공급 수출 제한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처럼 제조업, 특히 반도체나 2차전지와 같은 첨단 제조업은 국가 경제 및 정치 외교 전략으로 그 가치가 증대되고 있다.
제조업의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인도와 중국의 지난 20년간의 산업 정책이다. 중국은 제조 중심, 인도는 IT 기술 중심 성장 전략을 취했다.
국가 규모와 인구를 감안하면 두 정부의 시작점은 비슷했지만, 국가적 위상은 차이가 존재한다. 중국의 외교적 위상과 비교해 인도의 위상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차이가 제조업의 차이라 결론을 내리기에는 다소 비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의 위상과 자원과 서비스업으로 성장한 국가의 외교 위상이 다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제조업은 경제적 산업적 가치뿐만 아닌, 외교 안보, 기술 확산 등으로 국가 경쟁력 전반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제조업에 적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글로벌 트렌드
첨단 IC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제조업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는 제조 산업과 ICT 기술 융합의 결과물이다.
제품의 불량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류하던 것에서 인공지능의 분류 (classification and clustering) 기술을 통해 자동으로 분류하는 방식이 이미 반도체, 2차전지, 평판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경험치와 암묵지에 의존하던 장비의 이상을 판단하는 기술 또한 인공지능의 이상징후 판독 (anomaly detection) 기술을 통해 일반적인 상황과 이상 상황을 파악하는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생산 운영 분야에서는 수학적 최적화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재고 관리, 생산 스케줄링 관리, 생산 물류 관리가 전산화되고 있다.
발전된 로봇 기술은 공장 환경 전체를 바꾸고 있다. 1912년 미국 포드사에서 도입하여 보편화된 컨베이어 방식은 지난 100년 이상 제조 자동화를 대표하는 기술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컨베이어 대신 자율주행 로봇(ARM , autonomous mobile robot)이 컨베이어를 대체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인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과 로봇 기술이 융합하여 수백 대에서 수천 대의 로봇을 제어하는 기술이 제조 자동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수십 대에서 수백 대에 이르는 로봇이 필요한 부품을 제조 장비에 보급하는 방식이 이미 가전, 전자 부품 조립, 자동차 생산 분야에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 (Large Language Model, LLM) 기술 및 생성형 인공지능 (Generative AI) 기술 또한 제조 산업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특히 기존 로봇 기술과 결합하여 사람의 자연 언어로 로봇이나 자동화 장비를 제어하는 기술이 구글 및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개발 중이며,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제품 설계를 자동화하는 기술들이 이미 제품화 단계에 이르렀다.
◆제조업과 인공지능의 결합: 한국의 사례
이미 범용적인 인공지능 기술들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같은 미국 거대 IT기업이 주도할 수 밖에 없는 산업으로 전환되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Open AI사의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 또한 조 단위 투자가 없이는 경쟁이 불가피하다.
비록 대한민국에서는 네이버의 클로버 AI가 ChatGPT의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지만, 한국어 데이터 셋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개발 및 비즈니스 모델에 한계가 있다는 것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 인공지능 기술을 포기하는 것이 답일까? 오히려 제조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이미 명실상부한 제조 강국이다. 메모리 반도체, 평판 디스플레이, 자동차, 2차전지, 조선 등은 세계적인 제조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다. 더구나 인구당 산업 로봇 보급률 1위는 한국이다. 이처럼 다양한 제조 산업에서 이미 로봇 및 첨단 ICT기술이 도입되고 있고 첨단 기술 적용에 적극적인 곳이 바로 한국이다.
미국이 범용적인 인공지능 사업에는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제조 인공지능 관련해서는 아직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제조 인공지능을 적용할 제조 기반 산업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어야 제조-공정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다.
한국이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서 제조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육성한다면, 세계적인 제조 인공지능 기술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한국은 ICT 기술에서 중요한 속도 및 빠른 의사 결정 측면에서는 독일과 경쟁이 가능하다. 중국의 경우 제조 인공지능 기술을 자체적으로 활용 가능하지만, 이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전세계로 확산하여 글로벌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은 현 국제정세상 단기간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길: 제조업 인공지능 산업 육성
지금까지 한국의 제조 전략은 좋은 제품을 잘 만들어 공급하는 전략이었다. 품질 좋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잘 만들어 세계 자동차 및 가전 시장을 장악했던 일본의 전략을 모방한 것이었다.
최근 이러한 전략을 중국이 모방하여 저가 제품에서는 이미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고품질 제품 시장도 선점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대규모 자국 시장을 기반으로 하여 물건을 제조하여 판매한 후 차차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해 가는 중국에 대항해서, 한국이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유사한 제조 전략을 지속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장비, 설비, 인프라 및 공장 자체를 구축 및 위탁 운영하는 독일의 전략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독일의 지멘스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전자 부품 판매에서 공장 구축 및 운영 서비스로 그 방향을 수정하였다. 지멘스에서 제공하는 제조 분석, 시뮬레이션, 제조 인공지능 서비스, 및 스마트 공장 구축 서비스는 공장 자체가 수출품이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롯데칠성음료의 맥주 '클라우드'를 생산하는 충북 충주 공장은 독일 기술진이 설비, 장비, 제조 IT시스템을 턴키로 구축한 공장이다. 이러한 독일의 '공장 수출' 전략을 벤치마킹 하고 이에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제조업을 인공지능화하는 새로운 산업화 전략을 추구해 볼 만하다.
현실적으로 한국이 인공지능 산업을 인공지능 기술 자체만으로 국내 산업으로 육성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제조업에 특화하고, 이러한 기술과 스마트공장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는 전략은 AI시대에 한국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제조 인공지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머신비전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 코그넥스(Cognex Corporation)는 2019년 국내 토종 제조 인공지능 스타트업인 수아랩(SUALAB)을 약 2000억 원에 인수하였다. 또 다른 제조 인공지능 기업인 마키나락스(MakinaRocks), 다임리서치(DAIM Research), 원프레딕트(ONEPREDICT Inc.)와 같은 기업의 고객들은 대부분 해외 공장을 가진 기업들이다.
필자는 이러한 기업이 각자 도생하기보다는, 독일 사례에서처럼 국내 장비, 설비, 자동화 장비 기업과 함께 연계하여 해외 공장 건설 수출 및 서비스 지원 사업으로 전략을 확대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제조업은 지난 30년간 한국의 주력 산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력 산업이 미래에도 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과 국가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제조업 인공지능은 핵심적인 국가전략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200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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