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어민이 원하는 `처리수` 명칭, 거부 명분 없다
정부·여당이 후쿠시마에서 태평양으로 방류하고 있는 '오염수'의 공식 명칭을 '오염 처리수'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24일부터 일본이 태평양으로 방류하고 있는 것은 '과학적으로 처리된 오염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협도 뒤늦게 명칭을 '처리수'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엉터리 괴담·선동으로 생계를 위협받는 어민과 수산업계의 선택을 거부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 정부여당이 고민하는 '오염 처리수'는 우리 어법에도 맞지 않는 어색한 중언부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 이야기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일본이 ALPS(다핵종제거설비)로 처리한 '처리수'(treated water)를 충분히 희석해서 방류하는 가능성을 처음 제시한 것이 2021년 4월이었다. '처리수'는 지난 3년 동안 일본과 IAEA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는 공식 용어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일본의 '처리수'를 굳이 '오염수'라고 불러야 했던 확실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기관과 언론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이었다. 가짜·유사과학과 힘겹게 맞서야 했던 전문가도 용어 선택의 엄중함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이제야 불거진 '오염수·처리수' 논란이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이나 IAEA의 입장은 달랐다. 처음부터 '오염수'와 '처리수'의 구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처리수라는 용어가 단순히 이미지 개선을 위한 억지 시도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일본에게 '오염수'(contaminated water)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섭씨 2000도 이상까지 달아올라 지하에 묻혀있던 연료봉과 파괴된 원자로 잔해에서 방출된 방사성 핵종으로 오염된 지하수·빗물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 오염수가 실제로 태평양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사고 직후 하루 최대 500톤의 '오염수'가 속절없이 태평양으로 무단 누출(uncontrolled leak)됐다. 당시에 파괴된 원자로에서 흘러나온 오염수를 통해 태평양으로 누출된 방사성 핵종의 총량은 520PBq(52만조 베크렐)에 이르렀다. 현재 후쿠시마에 저장된 오염수에 들어있는 것보다 1000배 이상 많은 엄청난 양이었다.
오염수 무단 누출의 피해는 심각했다. 후쿠시마 앞바다의 생태계가 오염수에 들어있던 방사성 핵종으로 심각하게 오염됐다. 결국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연안에서의 수산물 채취를 전면 금지해야만 했다. 연간 6900만 달러에 이르렀던 후쿠시마의 수산업을 통째로 포기하는 결정이었다. 후쿠시마의 수산업은 아직도 사고 이전의 37%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이 오염수의 태평양 누출을 차단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차수벽(遮水壁)과 빙벽(氷壁)을 설치해서 오염수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오염수를 저장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파이프 파손 등의 사고가 이어졌고, 그때마다 수백 톤의 오염수가 바다로 누출되는 일이 반복됐다.
현재 일본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오염수의 '통제 방류'(controlled release)다. 저장탱크에 들어있는 오염수를 ALPS로 처리해서 62종의 방사성 핵종을 충분히 제거하고, 400배 이상 희석해서 방류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처리수'는 그런 통제 방류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다.
일본 정부가 '처리수'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어인 '처리수'에서 왜색(倭色)이 진하게 풍기지는 않는다. 더욱이 '처리수'에 해당하는 'treated water'는 현재 전 세계 모든 정부와 언론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 어떠한 거부감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용어를 쓸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일 뿐이다. '처리수·오염수'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은 '핵폐수'와 같은 악의적·선동적인 거친 구호에 빌미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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