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한국성 쥐고… 하염없던 고독의 길 ‘마침표’

정자연 기자 2023. 8. 3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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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기념展… 내일 개막
이재복 수원대 미술대학원장 "슬픈 한국 역사, 늘 새기며 작업 선보일 것"
이재복 수원대 미술대학원장이 자신의 정년퇴임 기념전시를 담은 책자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김시범기자 

 

“외롭고 애달팠다.”

남다른 미술 세계를 구축하며 남부럽지 않은 직함과 명성을 가진 이재복 수원대 미술대학원장(65)은 지난 37년 걸어온 길을 의외의 문장으로 정리했다. 아무도 가라 하지 않았지만, 작품에 한국적인 정체성을 녹여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기 때문일까.

‘한국성’을 바탕으로 전통과 서양의 조형적 기법을 융합한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이재복 수원대 미술대학원장(65)의 정년 퇴임 기념전 ‘Lee, Jae-Bok’이 2일부터 6일까지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내 구 문화원에서 열린다.

이재복 作- ‘슬픈역사-흔적II’ 

그는 조형미술의 형상제작이라는 장르를 활용하면서 전통 문제를 전통적인 소재로 표현하는 ‘한국화가’로 일평생 살아왔다.

전시에선 지난 37년간 선보인 예술 작품 중 26점을 선보인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소임을 마치고, 후배들과 애그림 애호가들에게 발표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면서도 전통과 서양의 조형적 기법을 융합하며 한국적인 아이덴티티를 끝없이 찾아 나섰다.

그동안 미술계에서 동양화는 전통적 산수화와 채색화 등의 영역에서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서양화는 서구적인 미술을 모방하거나 베끼는 작업이 되풀이 됐다.

이재복 作 ‘슬픈역사-환희'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국립파리대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와 한양대 대학원 이학박사(환경조형물)를 졸업하며 동양화와 서양화, 종합디자인과 미술사를 모두 섭렵한 그는 이 두 가지가 융합돼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한국 미술의 현대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해왔다.

그런 그가 고집스럽게 작품에 녹여낸 것은 ‘역사성’이다. 한국 전통의 재료를 활용해 현대적 어법으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며 손으로 직접 쓴 한지나 고서를 바탕에 깔고 그림을 통해 완성했다.

재료의 특징도 한결 같다. 작품엔 한국 전통의 재료와 주제만이 사용된다. 부채, 방패 연, 키, 빨래판 등 한국인이 오래 전부터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하고 손때 묻은 것들을 활용한다. 한국인의 정서와 손때가 묻어난 재료를 활용해 서양적 조형기법을 활용한 것이 그만의 한국적인 아이덴티티인 셈이다.

바탕에는 일제강점기 36년 간 문화적 단절을 겪었으나 우리 세대가 이를 극복하고 이어나간다는 주제 의식이 깔렸다.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 온 문화적 작업을 그가 다시 이어나간다는 철학이다.

“문학 작품에선 우리 민족의 역사가 등장하지만 미술에선 이러한 역사성을 담아내는 데 소홀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나치게 아름다운 유미주의만 좇아가는 태세에 민족의 삶과 역사를 녹여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모든 작품 제목이 ‘슬픈 역사’로 시작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번 전시에선 이 원장이 일평생 고민하고 역사성을 담은 ‘슬픈 역사-3人의 고인’, ‘슬픈역사-상징’, ‘슬픈역사-애물’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재복 作 ‘슬픈역사-상징’

그는 “작품 속에 일제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의 현대사를 담으려 늘 노력했다. 8.15 광복과 6.25 한국 전쟁. 늘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빛나는 대한민국을 만든 우리 민족의 생명력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우리 역사는 주기적으로 전쟁을 겪고 비로소 오늘을 맞았다. 내면에 있는 슬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예술의 길을 개척하면서도 작가, 교수, 사업가, 정치인, 사회활동가 등 수많은 이름으로 기꺼이 사회에 쓰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이제 작품에 매진하며 그동안 걸어온 길을 마무리 할 각오를 다졌다.

그는 “그동안 외롭고 애달팠지만, 융합의 세계를 구축한 작품이 이제 이해 받는 것 같다”며 “이젠 미술로 선보일 수 있는 한국성에 대한 마지막 정리 작업을 하며 작품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고 밝혔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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