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서울백병원... 환자도 의사도 간호사도 '눈물바다'

서현정 2023. 8. 3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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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으로 여기 다닌 지만 20년이에요. 갑자기 병원 자체가 사라진다고 하니... 참, 그냥 아쉽고 불안한 정도가 아니에요."

2년간 서울백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오혜정(26)씨는 "일방적으로 부산 발령을 받았는데 거주지 이전이 부담돼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어제도 70대 환자 한 분이 전화를 해 와 '여기서 낳은 아이 둘이 벌써 30대가 넘었는데 아쉽다'며 위로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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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83년 만에 경영난으로 문 닫아
일괄 이동 배치에 직원 반발 여전
서울백병원 진료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 입구에서 의료진 등 교직원들이 폐원 전 마지막 기념 촬영을 마친 뒤 슬픔을 나누고 있다. 뉴스1
"고혈압으로 여기 다닌 지만 20년이에요. 갑자기 병원 자체가 사라진다고 하니... 참, 그냥 아쉽고 불안한 정도가 아니에요."

31일 서울 중구 저동2가 서울백병원에서 만난 김지우(75)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은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문을 열었던 백병원이 83년간의 운영을 마치고 문을 닫는 날. 김씨는 옮길 병원도 결정하지 못한 채 마지막 진료를 끝내고 나와 병원을 서성였다. 그는 "몸이 불편한 남편도 함께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강남에 있는 대학병원 다니다가 너무 멀어 백병원으로 옮겼던 건데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서울백병원이 상주 인구 감소와 적자 누적으로 이날 오후 문을 닫았다. 수십 년간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들, 일터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의료진들은 한숨과 눈물로 '서울백병원'을 역사 속으로 보냈다.


폐원 못 받아들이는 교직원들

서울백병원 진료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한 직원이 "진료 공간을 폐쇄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폐원 관련 안내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권정현 기자

적자가 1,745억 원에 달한 서울백병원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2016년부터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인건비 조정 등에 나섰으나 인근 지역 상주인구 감소 등 경영 여건 악화를 이겨내지 못했다. 학교법인 인제학원 이사회는 6월 TF가 제안한 폐원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폐원 수순을 밟았고, 사무직과 간호직 등 직원 약 400명은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부산백병원, 해운대백병원으로 일괄 전보됐다.

인제학원 측과 직원 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직원들은 여전히 "사립학교법과 법인 정관에 따라 대학평위원회 심의와 구성원 의견 수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회 의결이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폐원 당일인 이날에도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병원 폐원 무효와 강제전보 취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직원들은 "여전히 서울백병원 폐원을 인정할 수 없으며, 폐원 결정과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과 부정에 관련된 자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사회의 폐원 결정 과정에 대한 교육부 감사를 요구하고 서울행정법원에 폐원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도 신청했다.

서울백병원 진료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한 방문객이 폐원 관련 안내문을 응시하고 있다. 권정현 기자

끝까지 진료실을 지키던 의료진은 눈물을 훔쳤다. 결의문 낭독이 끝나자 직원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잘 지내라" "건강해라" 작별 인사를 나눴다. 2년간 서울백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오혜정(26)씨는 "일방적으로 부산 발령을 받았는데 거주지 이전이 부담돼 퇴사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어제도 70대 환자 한 분이 전화를 해 와 '여기서 낳은 아이 둘이 벌써 30대가 넘었는데 아쉽다'며 위로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23명 의사들의 근무지는 아직 협의 중이다. 다음 달 중 결정되는데, 그때까진 빈 병원에 출근해야 하는 처지다. 13년간 이곳에서 근무한 혈관외과 오행진 교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의사로서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고령 환자들 "먼 병원은 힘든데..."

서울백병원 진료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의료진들이 폐원 전 슬픔을 나누고 있다. 권정현 기자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환자들이다. 고령 인구가 많은 중구에 위치한 만큼 노인 환자가 많았기에, 다수가 병원 옮기기를 부담스러워한다. 뇌경색으로 10년간 이곳에서 진료를 받았다는 오현숙(87)씨는 "의사 선생님께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모르신다고 한다"며 "나이가 많아 갑자기 병원을 옮기기도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큰일"이라고 토로했다. 심근경색 이후 17년간 통원치료했다는 정종필(55)씨도 진료의뢰서를 보여주며 "당장 이걸 들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처지"라고 속상해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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