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죽음을 취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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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고 처음 간 빈소에서 선배에게 했던 질문이다.
수습기자 시절이던 2021년 12월, 서울 송파구에서 일어난 '신변보호 가족 살인 사건' 사망자 빈소였다.
그날 이후에도 빈소 취재는 늘 어려웠다.
최근 빈소 취재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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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장현은 | 노동교육팀 기자
“제가 빈소 취재가 처음이라서 여쭤봅니다. 혹시 조문을 드려도 괜찮은 건가요?”
기자가 되고 처음 간 빈소에서 선배에게 했던 질문이다. 수습기자 시절이던 2021년 12월, 서울 송파구에서 일어난 ‘신변보호 가족 살인 사건’ 사망자 빈소였다. 20대 남성이 신변보호 대상자였던 전 여자친구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동생을 중태에 빠지게 한 사건이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유족 쪽에서 인터뷰를 원치 않았고, 나는 조용히 조문한 뒤 선배 지시에 따라 곧바로 빈소를 나와야 했다. 아직도 그때 그 무거운 공기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어색했던 분위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날 이후에도 빈소 취재는 늘 어려웠다. 유족이 거부하는 취재는 하지 않도록 지시받았지만, 가족을 잃어 당연히 슬픈 사람에게 ‘얼마나 슬픈지’, ‘왜 슬픈지’는 물어야 했고 이는 그 어떤 취재보다도 괴로웠다. 기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곳은 많지만, 빈소는 특히 그랬다. 죽음 앞에서 제 할 일을 할 뿐이라며 취재하는 기자가 사람들 눈에 좋게 보일 리 없다. 유족에게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다가가야 할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매번 어려운 과제에 맞닥뜨린 듯했다.
최근 빈소 취재도 그랬다. 지난 8일 에스피씨(SPC) 계열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가 리프트와 배합볼 사이에서 작업하던 중 기계에 몸이 끼여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이틀 만에 숨졌다. 지난해 10월 역시나 에스피씨 계열인 에스피엘(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있었던 비슷한 끼임 사고 이후 10개월 만의 빈소 취재였다. 장례식장에서는 빈소가 마련되는 과정부터 지켜볼 수 있었다. 안내 전광판에 고인 사진이 띄워지고, 영정 사진이 빈소로 들어가고, 조문객이 하나둘씩 오는 그 과정마다 울음소리가 났다. 내 마음도 무거워져만 갔다.
빈소가 막 차려지던 무렵, 아직 상복도 입지 못하고 있던 고인의 큰딸과 마주쳐 대화를 나눴다. 경황없는 그에게서 얼마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는지, 가족들에게 고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에 관해 들었다. “계속 빈소 안에 있을 테니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했지만, 조문이 시작되고 나서 유족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기도 했지만, 회사 쪽에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장례 둘째 날에는 건물 입구에서부터 직원들이 기자의 출입을 저지하기도 했다. 결국 그때 이후 고인의 큰딸을 다시 보지 못했다.
유족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찌해서든 회사 쪽을 피해 유족을 만나 설득하고 고인의 동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중요한 내용이 나왔을 수도 있고, 역시나 아닐 수도 있다. 환영받지 못하는 조문일 텐데도 빈소를 찾는 이유는 유족이 뭔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를 듣고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가 클 텐데, 과연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낸 걸까. 유족을 다시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전해야 할까. 이틀간 빈소 주변 에 머물며 여러 고민 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죽음을 취재하는 일 앞에서 어떤 게 옳은 일일지 판단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그 무거운 공기를 견디다 보면 빈소 취재를 좀 더 슬기롭게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어떤 죽음은 나에게 또다시 여러 과제를 남겼다.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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