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도 저기에도 못 끼는, 그러나 고유한
4 _코리안블랙 수정 언니
수정 언니는 국민의례 시간이면 하는 성조기에 대한 맹세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흑인에게 잘못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에 내적 갈등이 있고(언니의 표현이다) 한국인 피가 몸 안에 있어 미국으로만 충성을 맹세할 수 없다고. 언니 직장에 이민자들이 많은데 미국이 최고라고 말하는 이들을 보면 의아하다고 했다.
수정 언니는 1967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부대에서 일하며 따로 장사를 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어릴 적 아버지는 한번씩 다녀가실 뿐이었다. 그 빈자리를 외삼촌들이 채워줬다. 서울 영등포에 있는 주택에서 엄마, 외할머니, 대학생인 큰외삼촌과 작은외삼촌, 그리고 열일곱살 대학생 막내이모와 함께 살았다. 여기에 언니와 남동생까지 여덟식구였다.
어느 해 여름 아침, 어린 수정이가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할머니, 깜둥이가 뭐야? 왜 나 보고 깜둥이라고 해?”
할머니는 누가 그러냐고 물었다. 수정이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랬다고 일러줬다. 할머니가 수정이를 품에 안고 예쁘다며 토닥였다. 그날 오후 골목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백일홍 꽃잎이 푸슬푸슬 지던 지난해 이맘때쯤이었다. 토요일 아침 아이들을 한국 학교에 내려놓고 수정 언니와 카페로 갔다. 카푸치노를 마시며 언니 이야기를 들었다. ‘21세기에 한국인은 누구를 지칭할까?’라는 질문을 품고 있다며, 언니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청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5년 넘어서야 단둘이 마주 앉은 자리, 언니 입에서 ‘깜둥이’란 단어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때 내가 할머니와 다르다는 걸 알았지. 삼촌이나 엄마처럼 보이지 않다는 것을. 어렸을 때 언니와 남동생 나 이렇게 셋이 찍은 사진을 봐도 내가 가장 흑인처럼 태어난 걸 알 수 있어. 그래도 우리 할머니가 나를 무척 사랑해줘서 괜찮았지만…. 기가 막히지.”
수정 언니의 엄마와 아빠는 1962년 결혼했다. 아빠가 애달아서 매달렸다고 한다. 엄마는 흑인이란 점이 성에 차지 않았지만 반듯한 이목구비에 조용히 말하는 태도가 남달라 보였다고 했다. 어쩌면 동생 셋을 대학까지 뒷바라지해오던 입장이라 성실한 군인의 수입도 든든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수정 언니는 어릴 적 엄마가 한숨 토해내며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두 오빠만 어려서 죽지 않았어도…” 뒷말은 ‘내가 중학교도 가고 이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였겠지. 부잣집 딸인 외할머니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외할아버지에게 시집갔기에 돈 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세상마저 져버렸다. 어찌할 줄 모르는 어른 대신 똑 부러진 딸이 세상으로 나가 아버지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수정 언니 엄마는 밑천 없이 덤빌 수 있는 미제 장사로 간을 조리며 돈을 벌었다. 내가 기억하는 1970년대 말 집집마다 친척이나 엄마의 친구 중에 ‘미제 이모’라 불리던 분들이 한명쯤은 있었다. 탱 가루, 초이스 커피, 듀바리 로션 등을 가방에 넣고 방문했다. 우리 집에도 ‘미제 숙모’가 계셨다.
수정 언니와 이야기하며 우리 삶이 마치 커피를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질문이 수정 언니의 심장을 지나 그녀를 이루는 삼대 속 여러 인생까지 방울방울 추출해 투명한 단지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앞선 이들 삶의 여분이기도 하겠다.
수정 언니네는 언니가 8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용산 미8군의 초등학교에 다니다 왔지만 어린 수정도 열세살 수정의 언니도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했다. 담임 선생님이 수정 언니 아빠를 학교로 불렀다.
“어떻게 크리스털은 다른 애들과 한마디도 안 할 수 있죠? 도와주려고 옆에 앉힌 한국 애하고만 종일 말할까요?”
수정 언니는 답답해하며 내게 항변했다. “왜 그러긴, 내가 완전히 한국 사람이니까 그렇지. 한국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컸으니까. 나도 한국 사람이라고.”
백인 아이들은 ‘니거’(nigger·깜둥이)라고 수정을 비아냥거렸고, 흑인 아이들은 ‘잘난 척한다’고 외면했다. 언니 아버지 쪽 사촌은 ‘너의 머리칼은 우리 할머니와 똑같다. 네가 흑인인 나보다 낫다고 여기나 본데, 아니다’라고 한국사람들 속에 배어든, 언니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한국인의 인종서열 관념을 따졌다. 우울이 일렁이는 수정의 소녀 시절이다. 일요일마다 할머니, 엄마와 함께 가는 한인 교회에서 수정은 또다른 부조리를 느꼈다. 갓 부임한 젊은 전도사가 중고생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하고 연애하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교회가 싫어졌다. ‘나처럼 섞인 사람은 죄인이란 말인가?’ 엄마의 행동 또한 수정의 참을성에 마지막 지푸라기를 얹었다. 장사할 물건을 떼러 가는 엄마와 동행했던 날, 필리핀계 성소수자 여성들 가게에서 엄마가 그들을 무시하는 눈치가 보였다. 돌아오는 길 언니는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인데 엄마는 왜 그 사람들을 차별하냐’며 부르짖었다. 엄마가 당한 차별을 알기에 더 참지 못했던 것 같다. 흑인 여성들은 ‘우리 흑인 청년을 꼬셔갔다’며 비난했고, 백인들은 흑인과 결혼한 것을 알고는 징그럽다는 듯이 외면하던 시절이었다.
수정 언니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바라캠퍼스(UC Santa Barbara) 성악과에 입학하자마자 종교학 수업을 신청했다. 인생은 참 묘하다. 그 수업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학생들 학업을 살피는 카운셀러가 수정 언니를 질타했다. ‘나도 백인 남자들이 쫓아다녀. 그렇지만 사귀지는 않아. 역사를 보면 백인 남자들이 흑인 여자를 강간하고 구타했어. 너는 어떻게 사귈 수 있지?’ 그녀는 흑인이다. 수정 언니의 남자친구(현재 남편)는 백인이다. 수정 언니가 말했다.
“사실 내게도 자책하는 마음이 있어. 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목화 따러 나설 수밖에 없었고,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학력인증서만 챙겨 군대에 갈 수밖에 없던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어떻게 하면 흑인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늘 마음에 두고 살아.”
수정 언니는 국민의례 시간이면 하는 성조기에 대한 맹세를 할 수 없다고 한다. 흑인에게 잘못하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에 내적 갈등이 있고(언니의 표현이다) 한국인 피가 몸 안에 있어 미국으로만 충성을 맹세할 수 없다고. 언니 직장에 이민자들이 많은데 미국이 최고라고 말하는 이들을 보면 의아하다고 했다.
언니는 간호사다. 첫애를 낳고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을 보며 성악으로는 갚지 못하겠다 싶어 마흔셋에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수정 언니와 한국 학교로 돌아오니 언니 남편이 딸 장미를 데리러 와 있었다. 다부진 백인 아저씨에게서 장미 얼굴이 보였다. 그는 시에라대학교(칼리지)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언니가 나와 나눈 이야기를 살짝 들려주었다. 남편인 닉스 교수가 ‘학생들에게 저는 역사란 뉘앙스라고 말합니다’라며 짧은 소회를 건넸다.
뉘앙스, 무어라 해석해야 할까? 한사람 한사람이 느끼는 시대의 결일까? 아니면 개인이 뚫고 나온 시간일까? 역사가 뉘앙스라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 내 마음도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거겠지. 언니는 ‘한국 사람’이라는 근거로 유년시절을 보낸 공간과 외할머니, 엄마, 삼촌, 그리고 한국계 친구들을 소환했고, ‘나는 흑인이야’라는 답을 자신의 피부색과 사회적 위치를 직시하며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국인’에 대한 답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언뜻 한 인간에게 상황에 따른 여러 준거가 있다고 보이겠지만, 그 틀을 지탱하는 바탕엔 견고한 기준이 있다. 차별에 불편해 하는 언니의 살아있는 감각이다. 상대를 이루는 ‘존재의 성질’을 어디 하나로 묶지 않으려는 자세. 고유함 그 자체로 새로이 상대를 받아들이는 느린 마음이다.
역사란 모든 개인이 살아온 시간의 합이다. 오늘을 사는 나와 당신이 그 역사의 뉘앙스를 이루고 있겠지. 고.유.하.게.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인류 생존을 위한 10년 전략을 제시하는 대담집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담 <어크로스 페미니즘>, 문명의 현재와 이를 만들어온 개인의 마음 운용 실체까지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세계 지성 29인과의 대담 3부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대담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최재천의 공부>, 에세이 <나의 질문>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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