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철거로 윤 대통령 ‘이념전쟁’ 전위부대 나선 국방부
육군사관학교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내에 설치된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교외로 이전하기로 했다. 국방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반공산전체주의 이념전쟁의 전위부대로 나선 모습이다.
국방부가 논란을 무릅쓰고 홍 장군 흉상 이전을 강행한 배경에는 윤 대통령의 이념적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분단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중요하다며 북한을 공산전체주의로 규정해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국방부가 홍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면서도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은 것과 맞닿아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국정 운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며 “우리 당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다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 없이 실용이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5일 논란이 시작되고 1주일 동안 홍 장군 흉상 이전에 명시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자고 하진 않겠다. 다만 문제를 제기하고 한번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날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했다.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맥락상 이전하라는 지시와 다를 바 없었다. 대통령실은 흉상 이전은 국방부와 육사가 결정할 문제라며 거리를 뒀지만 사실상 배경에 윤 대통령이 있었던 셈이다.
결국 윤 대통령 대신 국방부가 총대를 멨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아 흉상 이전 방침을 밝히며 논란이 촉발됐다.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다음날 입장문에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교 육성이라는 육사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이전 추진을 정당화했다.
비판 여론은 거세게 일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 27일 육사 내 홍 장군과 독립군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 철거 추진을 “반역사적 결정”이라며 이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2021년 홍 장군 유해를 국내로 봉환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같은 날 “국군의 뿌리가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라며 이전 철회를 요구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철 지난 색깔론” “천박한 정치 선동”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윤석열 정부가 해방 후 남조선노동당(남로당) 경력이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문제 삼지 않는다며 ‘이중 잣대’ 비판도 제기됐다.
국방부는 이같은 지적과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되려 육사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 장군 흉상도 이전을 검토한다고 지난 28일 밝혔다. 국방부는 같은 날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 자료를 내고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해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고 재확인했다.
국방부는 해당 자료에서 “홍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갔다”고 밝히며 흉상 이전이 거론된 독립운동가 5명 중 홍 장군 흉상만 외부로 옮기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예상이 나왔다. 결국 육사는 이날 홍 장군 흉상만 육사 교외로 이전하고, 나머지는 교내 다른 곳으로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5명의 흉상을 모두 지금 자리에서 치우기로 한 것이다.
일각에선 홍 장군 흉상 이전을 계기로 윤석열 정부가 한국전쟁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백선엽 장군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국방부는 백 장군 흉상을 세우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육사가 지난달부터 홈페이지에 백 장군 웹툰을 5년여 만에 다시 게재한 사실이 확인되며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국가보훈부도 지난달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일제 강점기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백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바 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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