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국내 정세 보고" 전북민중행동대표 국참 여부는…재판부 '장고'
재판부 "배심원들에게 설명할 시간 얼마나 줘야 할지" 난색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 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하연호 전북민중행동 공동상임 대표의 국민참여재판 진행 여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자료가 너무 방대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경우 배심원들에게 설명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3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하 대표에 대한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전주지법 제13형사부(부장판사 이용희) 심리로 열렸다.
이날 준비기일에서는 앞서 하 대표 측에서 요청한 국민참여재판의 인용 여부에 대한 논의가 다시 한 번 진행됐다.
하 대표 측 변호인은 "제출된 증거에 모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다투는 부분이 없다"며 "공소 사실에 기재된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회합했다는 점', '국내 주요 정세 등 보고를 위해 북한 공작원에 연락한 점' 등에서 고의성을 전면 부인하는 만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특성상 수사기법 유출 방지, 수사 기능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역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배심원들에게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편의 제공' 등 생소한 법적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한 데다 이에 대한 치밀하고 신중한 법리적 판단이 요구된다"며 "최근 같은 취지로 수원지법과 제주지법에서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양 측의 의견을 들은 재판부는 지난달 13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 이어 이날도 난색을 표했다.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서 "판사들이 1만6000페이지에 달하는 증거기록을 다 보지 않고 판단할 수 없고, 검찰 측에 배심원들에게 유죄를 입증할 기회를 줘야하는데 자료가 너무 많아 설명할 시간을 얼마나 줘야할지 가늠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만일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할 수 없게 되더라도 피고인 측에서 양해를 해달라"며 "우선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보겠으나 만일 배제 결정을 하게 되면 별도로 공판기일을 지정하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게 되면 준비기일을 따로 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재판이 끝난 뒤 하 대표 측 지지자 20여명은 법정 앞에서 변호사와 법원 인사와 재판 일정, 항고 여부를 상의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9조 제3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이 나면 피고인 측은 7일 이내 항고할 수 있다.
하 대표는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베트남 하노이, 중국 북경, 장사, 장가계에서 모임을 갖고 회합일정 조율, 국내 주요 정세를 보고하기 위해 이메일을 이용한 기타 통신으로 북측과 연락을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국가보안법상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황을 알면서 반국가단체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 방법으로 연락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앞서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지난해 11월9일 하 대표 자택과 차량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서울, 경남, 제주에서 동시에 이뤄졌으며 대상은 통일·진보단체 간부 8명이었다. 서울경찰청은 국정원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지난해 12월28일 하 대표를 검찰에 송치했다. 하 대표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전북지역 진보단체들은 지난해 11월28일 국가정보원 전북지부 앞에서 하 대표 출석 조사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사건은 2024년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와 경찰 중심의 대공수사 전환을 앞두고 국정원이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한 기획으로 의심된다"며 "공안 탄압을 중단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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