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과 주파수 맞추는 ‘정치인’ 한동훈의 입?
“‘아바타’처럼 尹 의중 반영” “중도표심 고려, 수위 낮춰가는 듯”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앞으로 가려는데 뒤로 가겠다고 하는 건 안 된다. 이런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민주당에겐 이재명 대표 수사가 패만 잘 뜨면 이길 수 있는 화투 게임인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이 이른바 '이념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발언 수위도 갈수록 세지는 모양새다. 이에 야권에선 한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의 '아바타'처럼 메시지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는 의심어린 분석까지 제기된다. 여권은 한 장관의 선명한 대야(對野) 메시지에 환호하는 모습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한 장관의 거센 발언이 당의 중도층 표심 잡기에는 악재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달→한 주' 1메시지…질문 기다렸다는 듯 이재명 저격
시사저널이 31일까지 한 장관의 공식석상 발언들을 정리한 결과, 실제 한 장관이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빈도수는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지난해 5월17일 취임했을 당시, 한 장관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정치적 메시지를 냈다. 대상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나 '인사정보관리단 출범' 등 법무부 관련 이슈로 국한됐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대정부질의에서 "법무부의 인사검증이 잘못이라면 과거 정부의 민정수석실에서 했던 인사검증업무도 모두 위법"이라며 전 정부 인사들만 겨냥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 논란을 기점으로, 한 장관의 대야 공세 수위가 점점 올라갔다. 당시 그는 "김 의원은 입맛 열면 거짓말을 한다"며 "해당 의혹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같은해 11월 황운하 민주당 의원과 친야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에게도 "직업적 음모론자"라고 직격하며, 점차 공세 타깃을 민주당 전체로 넓혀갔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법 합헌' 판결이 나자 한 장관의 메시지 빈도도 한 달에 네 번꼴로 잦아졌다. 당시 본인에게 '탄핵론' 공세를 한 민주당을 향해 "기분 따라 입버릇처럼 탄핵을 함부로 거론한다"고 직격했다. 4월엔 '50억클럽 특검법'과 관련해서도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겨냥, "특정인 보호를 위한 50억클럽 특검은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며 직격했다. 당시 대정부질의에서도 5분 동안 민주당 의원 5명을 역공하며 '정치인' 면모를 과시했다.
절정은 민주당 리스크였던 '체포동의안 표결'과 '코인 논란' 정국 때였다. 특히 민주당의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선 6월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때 "돈 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여기 계신다"고 말해 야권의 질타를 받았다.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 의원 20명을 '잠정 범죄자'로 단정 지었단 이유에서다.
이후 이재명 대표와 연관된 각종 사법리스크가 확산하면서 한 장관의 비판 타깃이 이 대표에게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그는 앞서 1월부터 이 대표가 반복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을 두고 "이 대표의 혐의가 많은 게 검찰 탓은 아니다"라고 직접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후 최근에는 '정치 언어'로 통하는 '비유'도 자주 활용하며, 취재진 질문이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 이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그는 6월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와 관련해서도 "말이 너무 길다. 차라리 포기하기 싫다고 말했으면"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가 연이은 본인 검찰 소환조사에 대해 '국가폭력'이라고 토로했을 때는 "이 대표 본인 관련 수사로 몇 명이나 돌아가셨나"라고 즉각 비판하기도 했다. 또 이날도 대정부 단식 투쟁을 시작한 이 대표를 향해 "비리수사에 단식으로 맞서나"라고 저격했다.
"尹과 같은 '검찰 DNA'…野를 피의자로 보는데 협치 하겠나"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한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발언 수위'나 '타깃'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매 이슈마다 윤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톤을 높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함께 연루된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시작으로,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 관련 '인사파동'(2월), 국회 야당과의 '입법 거부권' 대치(4월), 5차례에 걸친 이재명 대표 검찰소환, '정율성·홍범도' 이념 논쟁(8월) 등 이슈마다 발언 수위가 더 높아져왔다.
특히 야권에선 한 장관에게 윤 대통령과 같은 '검찰 DNA'가 이어져, 정치권에 등판해서도 민주당을 협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야권의 한 관계자도 "대통령의 발언이 강해질수록 한 장관의 발언도 강해진다. 요즘엔 기자들 질문 한 번 나오면 본인이 두세 마디씩 기다렸다는 듯이 하더라"며 "만약 한 장관이 여당 총선을 이끌면, 민주당을 파트너가 아닌 '범죄집단', '반국가세력', '피의자'로 보는데 협치가 제대로 이뤄지겠나"라고 반문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선 총선이 다가오자 최근 한 장관이 발언을 정제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비윤(비윤석열)계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날 시사저널과 만나 "한 장관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되게 세졌는데, 최근엔 '수도권 총선 위기론'도 나오면서 본인도 중도 외연을 포섭하려고 수위를 살짝 낮춘 느낌도 있다"며 "대통령의 의중도 고려하면서 잠시 (정치적 수위에서) 숨고르기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찰 시절부터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렸던 한 장관이 윤 대통령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랜 세월 수사를 함께한 파트너이자, 법조계 선·후배로서 서로의 이상과 추구하는 가치를 누구보다 깊게 공유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에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두 사람이 같이 일해 온 세월 등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이 굳이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한 장관이 (윤 대통령의) 가치관이나 기조를 답습해온 게 발언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경영 시대정신 연구소장은 "두 사람의 공통점은 헌법 가치를 굉장히 중시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한 장관의 대야 메시지엔 헌법 가치에 대한 해석이 기저에 깔려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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