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뭄 속…美 코닝, 韓에 2조 단비
부진한 투자 7월 국내 설비투자 8.9% 급감…11년來 최악
디스플레이용 특수유리 제조에서 세계 1위 기업인 미국 코닝이 충남 아산에 15억달러(약 2조원)를 투자해 신규 생산시설을 구축한다. 웬들 위크스 코닝 회장(최고경영자·CEO)은 31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코닝은 휴대폰에 쓰이는 '벤더블(bendable·휘는) 유리' 분야의 통합 공급망을 한국에 세계 최초로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이 유리는 삼성전자 갤럭시 Z 폴드, 갤럭시 Z 플립 등 폴더블폰에 주로 사용된다. 아산은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 있는 곳이다.
코닝은 5년에 걸쳐 이 같은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위크스 회장은 "코닝에 제2의 고향이 돼준 한국에 감사하다"면서 "한국이 세계를 무대로 초박막 벤더블 유리 제조를 위한 허브로 자리 잡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1973년 한국에 처음 진출한 코닝은 지난 50년간 한국에 1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수천 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이번 투자는 최근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해외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을 추진하는 와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중 갈등 속에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지만 신산업 생태계를 공고히 구축하면 한국에도 외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방미 때 위크스 회장과 면담했다.
특히 한국 기업이 미국 등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동안 국내 투자는 부진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외국 기업을 유치하려는 '역발상'이 더 중요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주요국에서 보조금 경쟁이 붙으며 지난해 한국에서 순유출된 기업 투자자금은 622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순유출액은 내국인 해외직접투자(ODI)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뺀 값이다. 올해 상반기 FDI(도착 기준)는 77억5000만달러로 지난해 연간 투자액의 42.7%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2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에 투자하면 최대 35% 세금을 돌려주는 K칩스법(조세특례법 개정안)까지 도입했으나 '투자 온도'는 여전히 차갑다.
이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국내 설비투자는 11년4개월 만에 가장 큰 폭(-8.9%)으로 줄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이 -3%로 지난해(-2%)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봤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공급망 안정과 기술 확보 측면에서 국외 핵심 기업의 국내 유치가 시급하다"며 "투자 증가분에 10%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내년 이후로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찬종 기자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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