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예산 카르텔

이진명 기자(lee.jinmyung@mk.co.kr) 2023. 8. 3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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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예산 따내 지역구 사업에
지역주민들은 투표로 화답
이런 연결고리가 예산 카르텔
尹정부, 건전재정 주장하지만
쪽지예산 못 막으면 무용지물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시끄럽다.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히 전환했다고 한다. '퍼주기'로 일관했던 지난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200조원 이상 빚을 내 연평균 10.8%씩 예산을 늘렸다. 윤석열 정부의 예산 증가율은 올해가 5.2%, 내년이 2.8%다. 하지만 무작정 박수 치기는 어렵다. 어찌 됐건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18조원이나 늘어났다. 그러느라 80조원 나랏빚을 더 내야 하는 처지다. 지난 정부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걸 두고 건전재정이라고 자랑할 일은 아니다.

예산은 일종의 카르텔이다. 지역구 의원이 정부 예산을 따오면 그 돈은 지역 사업과 주민들에게 뿌려지고, 지역민들은 투표로 보답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지역구 의원은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한다.

새만금 예산이 그랬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다. 1987년 당시 노태우 후보는 새만금 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그 이후 총선, 대선 때마다 새만금 개발은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고 수백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2008년 새만금특별법이 제정되고 또다시 엄청난 예산이 흘러 들어갔다. 가까이는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행사를 빌미로 역대 전북 지역구 의원들, 전북도지사들이 정부 예산을 끌어갔다. 지역 사업자들은 그 돈으로 풍요를 누렸고, 주민들은 투표로 정치인들에게 보답했다. 그나마 이번 잼버리 사태를 계기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들어가던 새만금 예산에 제동이 걸린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무총리는 "전북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새만금 계획을 다시 짜라"고 주문했다. 예산 카르텔이 아니라 제대로 된 새만금 개발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광주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광주시는 정율성에 대해 북방외교와 한중 교류에 기여한 인물이라 주장하고 있고, 보수단체는 정율성이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한 적대 인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전면에서는 이념논쟁이 불붙고 있지만 이면에는 예산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다. 역대 광주광역시장들과 지역구 의원들은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빌미로 예산을 따내는 데 주력했다. 현재 계획으로는 용지 매입에 30억원, 생가 복원에 8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광주와 전남 공무원들은 정율성 기념사업을 명목으로 50여 회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상당수가 외유성 일정이다. 이들 공무원과 공원 조성으로 이익을 챙긴 사업자들이 이제 투표로 화답할 차례다.

내년도 예산안에도 카르텔로 의심받을 만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직업군인 부사관 월급이 192만원인데 징병된 병사 월급을 165만원으로 올린 것은 다분히 청년 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0세 아동 부모급여를 월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린 것도 마찬가지다. 선거를 앞두고 코로나 예산을 풀던 문재인 정부를 향해 '매표'라고 비난하던 것이 무색하다. 노인을 위한 일용직 일자리를 103만개로 늘리겠다는 대목도 지난 정부를 닮았다. 새만금 공항 예산은 대폭 깎았지만 가덕도 신공항에 5363억원을 배정한 것도 '돌려막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국회에서 이뤄지는 예산안 심의 절차다. 상임위 심사와 예결특위 계수 조정 과정에서 '쪽지예산' 남발이 우려된다. 더구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성 쪽지예산은 유례없는 극성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여당이 쪽지예산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건전재정은 고사하고 '제2의 새만금'만 수십 개 더 등장할 것이다.

[이진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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