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자는 《1947 보스톤》, 한국영화는 왜 한글 자막을 달았나
콘텐츠업계의 화두된 한글 자막…OTT로 시작해 지상파로 확대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최근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돌파하며 '올여름 가장 흥행한 한국영화'라는 타이틀을 확보한 《밀수》에는 또 하나의 타이틀이 있다. '개봉과 동시에 자막 버전을 상영한 최초의 영화'다. 개봉과 함께 한글 자막이 표기된 영화가 상영된 것은 100년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였다. 보통 개봉 이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야 자막판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밀수》의 자막판은 일반판과 동시에 개봉돼 관객들을 만났다. 이제 한글 자막을 달고 등장하는 다음 주자는 9월27일 개봉하는 《1947 보스톤》이다.
"《밀수》 자막판 관객, 관람 만족도 높아"
한국영화에 한글 자막이 본격적으로 얹어지게 된 배경에는 지난 6월 한국농아인협회에 도착한 한 통의 편지가 있었다. 자신을 후천적 청각장애인이라고 밝힌 필자는 자신이 배우 김선호의 팬이라고 밝히면서 "무대 인사를 꼭 보고 싶어 《귀공자》 시사회에 찾아가는데, 자막 없이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걱정이 된다"고 했다.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2시간 동안 영상을 통해 내용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을 다른 팬들과 똑같은 시기에 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대사나 효과음 등 청각 정보를 자막(CC·Closed Caption)으로 표기하고, 시각 정보가 필요한 상황은 음성으로 설명하는 화면해설((AD· Audio Description) 서비스가 적용되는 '가치봄 영화'가 2005년부터 운영되고 있지만, 영화 개봉 이후에 CC와 AD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식 개봉일을 기준으로 한 달가량을 기다려야 볼 수 있다.
일반 영화 1000회당 가치봄 영화가 1회 꼴로 상영되는 등 상영 횟수도 극히 적었다. 지난해 말 영진위 조사에 따르면, 2021년 8월~2022년 8월까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시·청각장애인의 비율이 전체의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극장 경험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또 자막과 함께 화면 해설 음성 서비스가 동시에 제공되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것에도 불편함이 있었다. 지난해 영진위에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가 비장애인들에게도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국영화에 한글 자막이 필수로 제공되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건의가 접수됐다. 영진위는 이에 대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극장 환경 조성을 위해 말씀해주신 의견을 반영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후 영진위 측은 CJ ENM·롯데엔터테인먼트·NEW·쇼박스·플러스엠 등 국내 5대 영화배급사,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등 3대 영화관과 협의를 거쳤다. 영진위는 배급사와 영화관, 한국농아인협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과 '시각·청각장애인 차별 없는 영화 관람 환경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개봉과 동시에 자막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 첫 결과물이 지난달 말 개봉한 《밀수》였고, 이달 초 개봉한 《더 문》이 그 뒤를 이었다. 《밀수》 자막판의 경우, 관객들이 놓칠 뻔한 대사나 노래 가사 등을 자막을 통해 볼 수 있어 높은 관람 만족도를 기록했다는 것이 영진위의 설명이다. 현재 자막판 영화들은 막을 내렸지만, 다음 달 27일 또 한 편의 영화가 한글 자막을 입고 개봉한다. 하정우와 임시완이 주연을 맡은 강제규 감독의 신작 《1947 보스톤》이다.
한글 자막판 영화는 전국 멀티플렉스 3사 영화관 43곳과 각 지역의 일부 작은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 영진위는 12월까지 추가로 영화 4편의 한글 자막판을 동시 개봉해 '연내 7편'이라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으로, 현재 배급사들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영진위 관계자는 "자막판을 상영하는 기존 영화관의 편성을 확보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자막을 선호하는 노년층들이 많이 찾는 작은 영화관의 편성까지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말에는 시각장애인용 관람 기기를 통한 화면 해설도 제공될 전망이다.
지상파 드라마도 재방송에 자막 도입
자막의 영향력은 다양한 콘텐츠로 확대되는 추세다. 일반 시청자들도 편의성과 몰입도를 위해 자막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는 대사도 놓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는 점, 재생 속도를 높여도 대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막이 있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이용자들이 늘고 있다.
콘텐츠를 자막과 함께 보는 시청 습관이 일반화되자 최근 지상파 드라마도 재방송을 통해 자막을 도입하고 있다. SBS는 지난 2월부터 《법쩐》과 《트롤리》, 《모범택시》 시즌2 등 일부 드라마 재방송에 한글 자막을 제공하면서 장르물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한국 드라마에 한글 자막이 입혀진 것은 지상파 드라마 제작 역사 6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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