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윤 정부의 폭주를 멈추는 방법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안다. 이명박의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든 것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은 이명박의 길을 따르고 있다.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라는 허황된 자신감, 정권에 대한 험한 여론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나쁜 습관은 이명박 정부 때 질리도록 봤다. 공영방송 경영진을 내쫓고 방송국 주류를 친정부 인사들로 바꾸려는 행태도 재연될 참이다. 방송장악 기술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동관으로 같다. 이명박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더니, 윤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은 뭐든 문재인 정부를 탓한다. 친서민 행보라며 시장에서 ‘오뎅 꼬치’를 먹었던 이명박처럼, 윤 대통령은 노량진 시장을 찾아 우럭탕·전어구이·꽃게찜 점심을 먹었다.
달라진 것도 있다. 이명박 시대와 윤석열 시대를 견뎌내는 사람들의 태도다. 이명박 정부 때는 사람들이 깨어 있었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이 회자됐고, 4대강 사업, 부자감세, 노동·언론탄압 등에 대해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정부 실책을 비판하는 원로와 학자들의 조언들은 공감을 얻었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는 단순히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역주행하는 정부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대통령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덮고, 도쿄전력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는 행보를 보였다. 막말 논란, 인사참사,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 등으로 정권 주변은 시끄럽다. 그러나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도, 체념하는 듯 고개를 돌린다. ‘정치는 늘 그랬다’는 식의 정치혐오 정서가 팽배한 탓이다. 담론과 구호들은 시들해졌으며, 공감보다 혐오의 정서가 도드라진다.
윤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이런 냉소와 무기력이 싫지 않은 듯하다. 윤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활개치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독립영웅들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치운다고 했다. 민주화를 이끌어낸 국민들의 성취를 모욕하고, 독립을 위해 싸운 선조들을 욕보이는 행태다. 아무리 ‘무데뽀’라도 윤 대통령과 그 주변이 앞뒤 고려 없이 폭주할 수는 없다. 이렇게 막나가도 국민들이 무덤덤하니 문제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기댄 바 크다. 이 위원장의 재산형성 과정, 언론탄압 논란은 진행형이다. 학교폭력 논란에도 이 위원장 아들이 고려대에 수시전형으로 입학한 사실은 윤 대통령이 강조했던 공정성에 어긋난다. 여권 내부에서도 다수가 반대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이동관 카드’를 밀어붙인 것은 사람들이 ‘이동관이 되든 말든’ 식의 냉소적 반응을 보인 탓이 클 터이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전문가들은 ‘각자도생’ 사회의 증상이라고들 한다. 실업난, 취업난, 주택난 등 어려움이 쌓이다보니 청년들은 좌절하고, 중년들은 제 살길 찾기 바쁘고, 장년층은 무력함에 빠졌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지적이나,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불과 몇년 전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다. 국민을 배신한 지도자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그새 없어질 리 없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시민들을 누가 잠들게 했는가.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윤 대통령과 여권은 정치혐오와 냉소를 부채질하고 있다. 냉소를 틈타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더 역주행할지 두렵다.
더불어민주당도 상당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전 정부는 위선, 내로남불, 오만한 행태로 실망을 안겼고, ‘진보나 보수나 다를 바 없다’는 회의론이 번졌다. 민주당은 냉소사회의 기초를 깔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선 패배 후 사정은 더 악화됐다.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 김남국 제명안 부결 등 민주당은 냉소사회의 공범이다.
그럼에도 무기력과 냉소를 걷어내는 것은 여전히 민주당의 몫이다.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고 맞서 싸우는 것은 야당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다만 퇴행적 행태로 윤석열 정부 뒷배 노릇이나 하는 현재 모습으론 곤란하다. 윤석열 정부에 성난 민심이 결국 돌아올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버릴 때도 됐다. 이재명 대표는 자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86세대의 상징적 인사들은 진보정치 실패 책임을 지고 총선 불출마 선언 등 기득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찬물 끼얹는 야당’에 머문다면, 윤석열 정부의 폭주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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