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붕괴 근본원인은 다단계 작업간 단절…건축시스템 재정비해야"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올해 4월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구조적 원인은 결국 구조계산부터 소방·설비 등을 종합해 설계도면이 만들어지고 시공 및 공사관리(감리) 절차에 이르기까지 다단계 작업을 거침에도 불구, 각 작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단절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관행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개별 단계를 책임지는 각 분야 전문가의 권한을 강화하고 전문가 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31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서울 강남구 소재 한국과학기술회관 대회의실에서'건설구조물 붕괴사고 및 품질저하 주요 쟁점 대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와 한국토목구조기술사회 등 15개 단체와 건축사 및 건축가 3단체 중 하나인 대한건축학회 주관으로 진행됐다.
◇철근 누락된 검단 설계, 구조도면과 구조계산서 달랐다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물 설계의 가장 첫 단계인 '구조도면' 작성을 위한 '구조계산'을 책임지는 업역이다. 구조도면은 건축물의 수명 기간 발생할 최대 내력에 대해 철근과 콘크리트 강도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안전한 건물 설계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서두에 이뤄지는 작업이다.
검단 사고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인 '설계상 철근 누락'은 '구조 계산 오류'에 기인한 것으로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회는 보고 있다.
홍건호 국토교통부 사고조사위원장(호서대 건축토목공학부 교수)은 이날 발표에서 "설계도서 적정성 검토 결과 구조계산서와 구조도면이 일부 상이한 문제가 발견됐다"면서 "일반 건설현장에서 종종 있는 문제인데 향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이 부분(실제 철근이 삽입된 부분)만 배근하는 것으로 알았다'는 증언이 조사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구조계산서와 구조도면이 상이한 문제의 원인으로는 현행 건축법상 설계를 오롯이 건축사가 담당하게 돼 있어 건축구조기술사는 초기 구조계산서만 납품하면 더 이상의 개입 권한이 없고, 구조도면은 다시 건축사가 그리는 절차가 도마에 올랐다.
홍 위원장은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자면, 현재 제도상 구조기술사가 구조계산서를 납품하면 건축사가 설계도서를 납품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사용하는 배근상세서는 시공사가 작성하며, 이를 다시 감리가 확인하는 다단계 작업이 이뤄지는데 이 관계가 전부 절단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안전의 전문가인 구조기술사가 참여할 단계는 첫 단계인 구조계산 외에 전혀 기회가 없어 이번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면서 건축시스템 재정비를 재발방지대책으로 제안했다.
◇60년대 제정 건축법 보완할 특별법 제정·비용 절감만 강조하는 VE 극복 등 제안도
실제 검단 사고 당시 설계를 맡은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는 구조계산을 구조기술업체에 맡기고 도면은 다시 다른 건축사사무소에 의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법상 책임은 유선이 지게 되면서도, 구조도면상 철근 누락의 책임 소재는 불분명해진 것이다. 이에 구조계산뿐만 아니라 구조도면설계 권한과 책임까지 달라는 게 건축구조기술사 측의 주장이다.
고창우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은 "현행 건축법(1962)과 건축사법(1963)은 우리나라 건축물 규모가 5층, 1인당 국민소득 90달러이던 시절 제정된 법률"이라면서, 이후 1970년 와우아파트, 1995년 삼풍백화점을 시작으로 붕괴사고가 이어진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축관련 설계 및 감리 시 △건축사가 책임지는 건축계획 외에 △구조 △설비 △토목 △조경 △소방 △전기 △통신 각 분야 전문가가 독립 권한과 책임을 갖고 분리발주 받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건축물 구조안전 선진화 특별법'을 제안했다.
이석종 한국토목기술사회 부회장은 이처럼 각 분야가 별도 전문 권한을 갖지 못한 채 건축사(설계자)와 협업하는 관계에 그친 원인으로 1960년대 제정한 건축법과 건축사법은 일본을 모델로 하되 2000년대 이후 학제개편은 미국 모델을 따르며 발생한 혼선을 짚었다. 일본은 건축사 중에서 구조전문건축사, 토목전문건축사, 설비전문건축사 등을 양성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미국은 아예 설계를 건축물과 구조물로 분리하는데, 한국은 대학에서 건축학과와 다른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구조기술사가 일본 과거 법률에 묶여 건축사로부터 독립된 권한을 갖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법률문제 외에도, 최소 비용과 최대 효율을 강조하는 밸류 엔지니어링(VE) 관행도 지적됐다. 구정모 DL이앤씨 건축기술지원 팀장은 "특히 구조에서 VE 설계를 많이 한다. 구조엔지니어 능력평가를 건설사에서는 물량을 줄이는 능력으로 평가해 왔다"면서 "이번 검단 사태를 보면서 '그게 아니구나, 큰 리스크를 안을 수 있겠구나'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감리도 건축감리가 구조분야까지 수행하는 관행을 없애고 토목, 전기, 설비처럼 전문적인 분야로서 구조감리를 별도 신설해 현장에 상주토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동희 국토안전관리원 본부장도 "골조공사만큼은 VE를 적용시키지 말자는 말이 나온다"고 부연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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