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SIWFF] '믿을 수 있는 사람' 곽은미 감독, "탈북민 아닌 보통 청춘의 이야기" [TEN인터뷰]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믿을 수 있는 사람'의 곽은미 감독은 탈북민이라는 사회적으로 무거운 소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단한 삶을 애써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하게 담아낸다. "동시대 우리의 젊은 세대와 이야기를 탐구하고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라는 말처럼 연출의 방향을 잡을 때, 고민이 많았다던 곽은미 감독. 그래서일까. 주인공 '한영'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종종 겹쳐진다.
영화는 탈북민 '한영'이 중국어를 활용해서 한국에서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지만, 동생 인혁의 묘연한 행방과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힘든 상황을 그린다. 나로서 올곧이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닌 외부의 요소로 인해 지속적인 변화를 맞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것. 2023 아이치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지금 여기, 한국영화' 부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지금 여기, 한국영화' 섹션에 선정됐다. 25일 관객들과의 GV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관객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사실 전주국제영화제,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이어 뉴욕 아시안 영화제를 다녀왔는데 할 때마다 긴장이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처음 만든 장편영화이고 긴 호흡으로 찍어서 어떻게 봐주실지 긴장되었다. 관객 한 분은 초반 시나리오가 어땠고,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지 물어보시더라. 사실 잘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어느 정도까지 바뀐 부분을 이야기해야 할지를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번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주인공 한영을 연기한 이설 배우가 한국경쟁부문 배우상을 받았다. 이설 배우를 캐스팅한 일화는.
아카데미 장편 영화 중에 '썬더버드'라는 작품이 있다. 당시에 이설 배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이후 추천을 받았는데 전에 드라마 '옥란면옥'에서 탈북민 역을 하셨더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연기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첫 미팅을 가졌을 때, 양면이 공존하는 얼굴이 좋았던 것 같다. 아이디어를 많이 제시해주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한영 역이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부담이 크셨을 것 같다. 고맙다.
해당 소재에 관심을 갖고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는.
친구의 이야기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직장인인데 회사를 그만두고 가이드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중국어 통역 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2014년에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들어오던 시기를 지나 사드가 터졌다. 이후에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어들어서 힘들었다고 하더라. 당시에는 탈북민 캐릭터로 구상하지는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어떤 여성분이 낯선 한국어로 즐겁게 이야기하더라. 우리 일상에 그들이 가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영이 탈북민이라면 아이러니한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탈북민을 소재로 하지만 이들의 아픔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아서 더 맘에 쓰인다. 일부러 담담하게 연출을 하려고 한 것인가.
연출하는데 중요한 지점이었다. 기존의 탈북민 영화의 표현 방식도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젊은 세대를 많이 보고 참고하려고 했다. 경제적인 상황도 그렇고 생존 자체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대 우리의 젊은 세대와 이야기를 탐구하고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취재차 만난 탈북민들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데 세대마다 차이가 있더라.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단단함과 고립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상실이 주요하게 다뤄졌던 것 같다.
관광통역안내사인 한영은 일이 없다가 대타를 하면서 처음으로 관광객들을 만나게 된다. 직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한영의 마음을 채워준 대상이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아이였다.
외국에 가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대상은 아이들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은 필터가 없이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배타적이지 않은 태도로 솔직하게 바라본다. 한영의 고군분투가 아이의 입장에서는 순수하게 보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편견없는 태도가 영화 속에서 보여지길 바랐다.
현재를 살아가는 각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들 여유가 없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영화 속에서 직장에 관해 묘사할 때, 권력이나 시기 질투보다는 환경적인 영향이 얼마나 사람을 지배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한국인 가이드는 입지가 그렇게 크지 않다.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은가. 그 세계에서 한국인은 약한 존재다. 일과 관련된 존재에서 약자랄까.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인이든 탈북민이든 중국인이든 모두 지쳐있다. 사실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나온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한영에게 사라진 동생 인혁과 중국에서 온 리샤오는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인 동시에 골치 아픈 존재다.
취재차 그들을 만나 뵙고 느낀 것은 굉장히 잘 적응해서 살아간다는 점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그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직도 고향의 가족이었던 것 같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제한적인 상태에서 산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시점에서 함께 사는 탈북민들이 겪는 상황에 많이 집중하고 싶었다.
요양사로 일하는 친구 정미는 "나도 이거 하고 싶겠니? 니 쫄거 없다. 네 식대로 해라"라고 말한다. 마치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내가 느낀 그들은 직설적인 부분도 많더라. 한영도 초반부 면접에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라고 감정을 숨기지 않지 않는가. 그런 면은 정미를 통해서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여과 없이 표현하고 드러내서 대비를 줌으로써 한영은 끝까지 동생에 대한 부분을 놓지 않고 움켜쥘 수밖에 없는 과거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선택지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미도 "우린 모습만 같지. 한국 사람들한테 외국인만 못 하다. 같이 가자"라며 같이 이민을 떠나자고 말한다. 한영의 주변 인물들이 그녀의 곁을 떠나도록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한영이 따라가지 않은 이유는 가족에 대한 끈을 못 놓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멀어지지 않으려고 한국에 머무는 거다. 우리도 반추해서 생각하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에게 탈북민의 존재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런 상태가 맞는 것인지 한영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영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을 위한 새로운 시도처럼 보인다.
사실 한영이 한국에 온 것은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동생을 따라서 한국에 오게된 것이다. 그래서 상황에 맞춰서 강인하지만 계속된 상실로 고립감을 느낀 것 같다. 한영의 선택은 굉장한 성장인 것 같다.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하고픈 말이다. 외국을 나가서 일하는 젊은 친구들도 많은데, 그때마다 기성세대의 안 좋은 시선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떠나는 여성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영의 웃음이 의미심장하다. 현장에서 디렉션은 어떻게 줬는가.
시나리오에는 '항상 웃고 있던 한영의 웃음기가 사라진다'였다. 현장에서 이설 배우와 여러 테이크를 갔었다. 편집 과정에서 화면을 보는 한영이 부담스럽지 않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은근한 차별을 느끼는 한영이 자신의 생계 수단을 놓고 마지막 선택을 할 때, 그것을 놓게 되는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패인데 실패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관객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고 어떤 것을 느끼면 좋겠나.
한국의 젊은 청년들과 북한의 젊은 탈북민들이 환경적으로 비슷하다는 지점. 단순히 탈북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개봉 시기가 정해졌나.
10월에 개봉해서 관객들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차기작 계획이 있는가. 혹은 최근에는 어떤 소재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전까지는 20대나 10대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에는 나와 가까이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결혼하지 않은 40대 여성의 이야기?(웃음) 이번 작품이 무거운 부분이 있다면 밝은 면을 보여주는 영화를 찍고 싶다. 물론 영화가 무거운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까이 있는 주변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예전에는 확실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편 영화들이 너무 소중하다. 영화를 찍으면 아이가 탄생한다는 말이 뻔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출산의 고통을 느끼듯 생명체 하나를 낳는 것 같다. 물론 출산 경험은 없지만(웃음) 조금이라도 나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은 영화라고 한다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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