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연고지 ‘KCC의 난’…버럭했다 ‘역풍’ 맞은 전주시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3. 8. 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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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신축 놓고 전주시-전북대와 갈등 끝에 이전 선택
전주시 뒷북 기자회견…“양해도 없고 협상도 안해, 서운”
전주 민심 ‘부글’…“전주시 무능행정 보여준 치욕적인 날”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북 전주시가 프로농구 전주 KCC의 연고지 부산 이전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며 반발하다 역풍을 맞고 있다. KCC가 22년 동안 홈구장으로 쓴 전주실내체육관은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홈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KCC 구단은 실내체육관 신축 등의 문제로 전주시와의 신뢰에 금이 가면서 이전을 택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KCC의 난(亂)'이라고 한다. 

KCC 연고지 이전에 따른 지역사회의 파장이 커지자 전주시는 뒤늦게 "새 홈구장을 신축하고 기존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최애 구단의 이전 소식을 접한 전주 시민들의 분노는 커졌다. 시민들은 전주시의 무능 행정을 비난하는 수백 건의 글을 시청 홈페이지에 쏟아내고 있다. 불똥은 도지사·시장·지방의원 다수가 더불어민주당 일색으로 구성된 지역 정치권으로도 튀는 모습이다. 

8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 센터에서 KBL 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KBL은 전주 KCC가 부산으로 연고지를 변경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연합뉴스

KCC 연고지 전주에서 부산행, 왜?

31일 전주시와 한국프로농구연맹(KBL) 등에 따르면, KBL은 전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KCC의 연고지를 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지난 2001년 대전 현대를 인수한 후 전주로 건너간 KCC는 22년 만에 창단 후 처음으로 전주를 떠나게 됐다. KCC는 지난 1973년 지어져 올해로 50년차가 된 전주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KCC의 연고이전설이 불거진 지난 2016년 전주시는 농구장 신축을 약속했지만 수년째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1월 전주월드컵경기장 인근에 새 경기장을 짓기로 하고 기공식까지 열었다. 올해 말까지 완공을 약속했지만 아직 공사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 현 전주체육관 초지 소유주인 전북대는 일대 재개발을 위해 2025년까지 체육관을 비워달라고 요구하며 KCC를 압박했다. 체육관 부지가 전북대의 '캠퍼스 혁신파크 조성사업' 부지에 포함되면서 철거를 앞두고 있다. 

전주시는 KCC 구단에 2025년까지 경기장을 비우고 군산으로 잠시 연고지를 옮겼다가 오는 2026년 새 경기장이 완공되면 돌아오라는 비상식적인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벼랑 끝에 몰린 KCC는 곧장 연고지 이전을 추진했다. 새 체육관 건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노후화된 전주체육관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형길 전주 KCC 단장이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 빌딩에서 열린 이사회 종료 후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KCC 측 "홀대 감내 못할 상황"

KCC 연고지 이전 배경을 놓고 전주시와 구단 사이에 입장이 엇갈린다. KCC는 최근 연고지 문제를 놓고 지역 사회와 갈등을 빚었다. 지난달, 전주시는 과거 KCC에 약속했던 체육관 신축을 백지화하고 그 자리에 프로야구 2군 구장을 만들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농구가 뒷전이 된 느낌이었다"는 게 KCC 측의 소회다.

이와 관련, 구단 측은 전주시와의 갈등을 원만하게 수습하기 위해 인내했지만,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지역 국회의원이 "체육관을 직접 지으라"고 요청하는 등 홀대가 지속됐다는 것이다.

KCC 최형길 단장은 "연고지를 옮기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부분은 22년간 응원해주신 전주 농구팬들이었다"며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죄송하다는 이야기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때는 지난 4월이다. 새 체육관을 우리 보고 직접 지으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또, 5월에는 새 체육관이 들어설 부지에 야구장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농구는 뒷전이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인태 전주시 부시장이 프로농구팀 KCC 이지스의 연고지 이전과 관련해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전주시

전주시 "KCC가 기획한 각본"

그러나 전주시의 입장은 달랐다. 전주시는 "올해 초부터 사전 기획된 각본"이라고 주장했다. 전주시는 KCC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졸속 이전으로 시민을 우롱했다고 맹비난했다. 수차례 면담 요청에도 구단 측이 만나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주시 한 관계자의 말이다. 

"KCC가 밝힌 내용 중 일부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체육관 건립을 요구했다거나 빨리 방을 빼라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새 체육관 건립이 늦어진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코로나19와 각종 건설비 문제로 차질이 생겼다. 지난해까지는 KCC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우리와의 만남을 피하더라. 시청에선 심도 높은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KCC에서 언론 플레이를 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 이사회 의결이 끝났다."

이 관계자는 "KCC의 현재 홈구장인 전주실내체육관의 철거 시기가 2026년 이후로 연기됐고, 복합스포츠타운에 건립할 새로운 홈구장과 보조경기장도 2026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며 "전주에 완전히 정착할 여건이 마련됐는데도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이전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전주 민심 발칵…"전주시가 잼버리 했네" 野에 불똥도

이날 KCC 연고지 이전 소식이 전해지자 전주 민심은 발칵 뒤집혔다. 전주 시민들은 하루 1~2건 올라오는 시청 홈페이지에 이틀 사이에 300건이 넘는 글을 쏟아내고 있다. 전주시는 KCC의 일방적 통보를 비난하고 나섰지만, 프로농구 최고 인기 구단을 붙잡지 못한 안일한 행정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엔 "진짜 무능함을 보여준 치욕적인 날" "전주시가 잼버리 했네" "전주시 역겹다" "니네 같으면 수년째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싶겠냐?" "이번 기회에 전주시청 고인물들 다 적폐 청산해야 된다" "전주시청은 계속 성명서 내고 규탄하고 마지막까지 치졸한 그런 모습 그만 보였으면 한다" 등 비판과 조롱 글이 쏟아졌다.

​전주 KCC의 연고지 이전 결정에 분노한 전주 시민들이 시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남긴 비판 글. ⓒ전주시청 홈페이지 캡처​

전북지역 제1당인 민주당도 타킷이 되고 있다. 한 시민은 "아무리 뭣같이 행정을 해도 어차피 또 민주당이 당선되니....kcc가 아니라 kcc 할애비라도 저 꼴나지""라고 썼다. 다른 시민은 "20여 년 넘게 신축구장을 약속했으면 이번에는 지어야지 그간 참아준 KCC도 대단하다"며 "통보하지도 않고 갔다고 비난하는 전주시와 우범기 시장 역겹다. 민주당 이죄명당 절대 안찍는다"고 썼다.

또 다른 시민도 "앞으로 돌아오는 시대에는 민주당 자리는 없을 것"이라며 "거지같은 뒤통수 치는 행정 때문에 많은 전주 시민들의 표를 잃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라"고 비판했다. 아예 "민주당에 민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도 있었다.

전주시, 여론 악화에 때늦은 대응 

KCC 부산행이 기정사실화되자 전주시는 반발했다. 시는 30일 입장문을 통해 KCC의 연고 이전에 대해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전주시는 "KCC는 이전과 관련해 전주시와 협의는커녕 통보조차 없었다"면서 "시민, 팬과 동고동락한 시간은 눈앞의 이익만을 찾아 이전을 추진한 KCC의 안중에 없었던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주시는 여론이 악화되자 한 발짝 물러났다. KCC 구단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인태 전주 부시장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KCC구단 측이 대화 자체를 봉쇄하고 전격적으로 이전을 추진한 것에 대해 당혹스럽고 마음이 아프다"며 "팬·시민과 오랜 기간 함께 했는데 양해를 구하는 작업도 없었고 행여나 가더라도 전주시와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 시 입장에서 당혹스럽고 안타깝고 일정 부분 서운하다"고 밝혔다.

프로농구 KCC 홈구장 전주실내체육관 ⓒKBL

하지만 농구계에선 전주시의 대응이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농구 관계자는 "이미 새 체육관 건립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KCC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고 꼬집었다. 섣불리 구장을 비워달라고 '협의'를 요청해 빌미를 만든 것도 전주시라는 비판이 나온다. 새 홈으로 유력한 부산 사직체육관이 1만 2000석 규모로 전주의 3배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교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1년에 한두 차례 면담으로 노력을 다했느냐는 무사안일한 행정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일부에선 전주 인구(64만 명)보다 시장이 큰 부산(330만 명)으로 가기 위해 KCC가 사전작업을 끝낸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또 전주체육관은 50년 전인 1973년 건립돼 시설이 크게 낡은 상태다. 관중석 역시 4300석 정도로 10개 구단 홈구장 중 규모가 가장 작다. 

실제로 이날 이사회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오전 8시30분 시작해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론이 났다. 10개 구단 단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KCC가 연고지 이전의 필요성을 설명했고, 표결 없이 KCC의 부산행이 확정됐다. 

프로야구단이 사라진 지 20년 만에 시즌 올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인기 농구단까지 전북을 떠나게 된 상황이다, 프로구단은 전북현대 축구 한 팀만 남게 되면서 즐길 거리 없는 불모지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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