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류승룡처럼 초고속 회복?…'100억 적자' 병원, 수십억 쓴 이유
최근 디즈니플러스에서 인기를 끄는 드라마 '무빙'에서 배우 류승룡은 칼에 찔리거나 불에 데도 상처가 바로 아무는 초능력을 지녔다. 마치 류승룡의 초능력처럼 상처 난 자리를 빠르게 아물게 하는 치료과정이 의학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른바 '고압산소치료'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상 부위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큰맘 먹고' 고가의 고압산소치료 장비를 도입한 곳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화상전문병원인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이 지난달 14일 개소한 '고압산소치료센터'다. 국내 화상전문병원(5곳) 가운데 최초 도입했다. 이에 따라 의료계에선 이번 고압산소치료의 도입이 우리나라 화상 치료 패러다임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
과연 고압산소치료의 원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진행할까? 서울 영등포동에 위치한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를 다녀왔다.
마치 비행기 내부 같은 모습의 고압산소치료 장비에 들어서면 환자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다. 환자가 착석한 후 의자마다 설치된 호흡기를 착용하면 1회에 최대 2시간 동안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진행하는 고압산소치료의 단계는 이렇다. 먼저 이 장비 바깥에서 장비를 조종하는 간호사와 응급구조사가 '가압' 버튼을 누르면 장비 내부에 압력이 점차 가해진다. 이때 마치 비행기가 이륙할 때 기압 차로 귀가 멍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을 경험하는데, 이때 코를 막고 숨을 불어넣어 귀가 뻥 뚫리게 하는 '이퀄라이징' 동작을 환자 스스로 취하며 기압에 적응한다. 환자는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안내 사항에 따라 가압과 이퀄라이징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장비 내부 기압은 1기압에서 2~4기압까지 오른다. 환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산소가 매우 센 압력으로 체내 유입된다. 수중 10m 깊이까지 내려갔을 때(2기압)와 맞먹는 정도로 압력이 높아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몸 안에 들어온 산소는 혈액 속에 녹아들고, 말초 부위의 가느다란 혈관까지 잘 도달한다. 산소가 풍부해진 혈액은 각 조직에 산소를 공급한다. 그 덕분에 조직이 활성화하면서 몸에 '이로운' 효과를 다양하게 발휘한다. 상처의 빠른 회복뿐 아니라 항염, 독소 배출, 독성물질 생성 억제, 콜라겐 형성 촉진, 관절 통증 완화, 면역력 향상 등 효과가 입증됐다. 일반인도 즉각적인 피로 개선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산소 분자는 혈관에서 적혈구에 붙어 혈액을 타고 이동한다. 그런데 화상·염증 등으로 모세혈관이 손상당하면 적혈구가 해당 혈관을 지나갈 수 없다. 이 때문에 덩달아 산소 분자도 이동하지 못해, 결국 주변 조직 세포에 산소를 공급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기압을 높이면 산소 분자가 적혈구와 굳이 결합하지 않아도 산소 분자 그대로 혈액(혈장) 속으로 녹아든다. 이들 산소 분자는 크기가 적혈구보다 매우 작아 망가진 모세혈관뿐 아니라 전신의 세포까지 잘 도달한다. 몸 곳곳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단 얘기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이 이곳 센터를 개소한 후 화상 환자는 물론, 당뇨발(당뇨병성 족부 궤양), 빈혈, 돌발성 난청 환자 등 다양한 질환군의 환자가 고압산소치료를 문의하는 비율이 늘었다고 한다. 허준 병원장은 "고압산소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환자군을 먼저 치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치료의 건보 적용군은 △중독증(일산화탄소 중독, 가스색전증, 화상, 두개내농양, 혐기성 세균감염증) △급성기의 중심 망막 동맥 폐쇄(시력 소실 24시간 이내) △수혈이 불가능한 고도 출혈로 인한 빈혈 △방사선 치료 후 발생한 조직 괴사 △당뇨병성 족부 궤양(3등급 이상) △만성 난치성 골수염 △식피술(다른 부위 피부를 채취 후 이식), 피판술(다른 부위 피부·근육·뼈를 가져와 덮음) 후 △돌발성 난청(초기 청력 역치 80데시벨 이상) 등이다. 1~2시간 치료 시의 보험수가는 10만원 상당, 2시간 이상이면 23만원 상당이며 건보 적용 후 본인 부담률은 5~50%(외래환자 50%, 입원환자 20%, 중증 환자 5%)이다. 총 14회까지 건보 적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고압산소치료를 도입하는 데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는 게 허 병원장의 설명이다. 이 병원은 연간 100억원 이상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수십억원대의 고가 장비를 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는 "화상·외상은 일상 가까이 있으면서도 한 번 발생하면 응급상황인 경우가 많고 환자 다수가 빈곤층"이라며 "필수의료 분야이지만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어 병원이 100% 투자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병원장에 취임한 그가 지난 1년여간 이곳 센터장까지 직접 맡으면서 센터 구축을 이끈 건 화상 환자에게 고압산소치료의 효과가 분명한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화상 부위의 빠른 치료를 돕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실제로 고압산소치료는 화상 상처 조직의 빠른 회복을 효과적으로 돕기 때문에 전체 치유 기간이 크게 단축된다. 드레싱만 해놓을 경우 자연치유로 4주 걸릴 상처가, 고압산소치료를 병행하면 1주로 줄어든다.
이로써 상처의 통증 등으로 인한 환자 불편감과 후유증도 낮출 수 있다. 상처 조직의 재생도 촉진하는 만큼 급성기 화상 환자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허 병원장은 "우리 병원은 암 환자를 치료하지 않지만, 암 환자에게도 이 치료가 분명히 도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귀띔했다.
이 병원은 지난달 14일 고압산소치료센터를 가동한 후 현재까지 500건 이상(1인당 환자 중복 치료 포함) 치료를 진행했다. 이곳 센터를 통해 화상 등 창상 환자의 치료 기간을 줄이고, 후유증 경감을 통한 사망률을 낮추겠다는 단기 목표도 세웠다.
장기 목표로는 고압산소요법의 효용성을 연구해 데이터를 쌓고, 창상 중환자 등으로 치료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창상 환자의 고압산소치료 적정 치료 지침도 만들 계획이다. 허 병원장은 "화상에 특화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추후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도 착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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