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0년 주담대’ 당국의 오락가락 정책

김수정 기자 2023. 8. 3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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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 금융 당국이 나서서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을 권장해 왔는데, 이제 와서 은행권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의 주범이라고 지적하니 억울합니다.”

50년 만기 주담대 관련 취재에 나서자 복수의 은행권 관계자들이 공통으로 전한 말이다. 최근 은행은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에 나섰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증가 주범으로 50년 만기 주담대를 지목하자 은행권이 선제 조치에 나선 것이다.

NH농협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BNK경남은행도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카카오뱅크는 주택구입자금 주담대 대상자 조건을 기존 세대 합산 기준 무주택 세대로 변경했다.

판매 중단까진 아니더라도 나이 제한에 나선 은행도 있다. Sh수협은행은 만 34세 이하 대출자에게만 50년 만기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구은행과 카카오뱅크도 같은 연령대로 판매 제한에 나섰다. 앞서 신한은행과 광주은행은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할 때부터 각각 만 34세, 만 50세 이하로 나이 제한을 뒀다.

은행권은 올해부터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출시해 왔다. 앞서 Sh수협은행은 지난 1월 은행권 최초로 주담대 최장 만기를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연장했다. 이후 시중은행에서는 지난 7월부터 잇달아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다.

최근 은행권에서 출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50년 만기 주담대에 제한을 두는 데는 금융 당국의 눈총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해 가계부채를 늘리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애초 초장기 주담대는 금융 당국이 권장해 온 상품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 2021년 4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도입했다. 지난해 6월에는 가계대출 정상화 방안에 50년 만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하자는 내용을 포함했다.

청년층과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을 돕고 금리 인상기 취약 차주(돈 빌리는 사람)의 월 상환액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라고 당국은 설명했다. 지난해 8월 한국주택금융공사는 50년 만기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을, 올해 1월에는 50년 만기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늘자 금융 당국이 그 원인을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취급하는 은행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취약 차주 지원 방안에 발맞춰 ‘상생금융’을 실천하기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를 취급하게 됐다”며 “그런데 갑자기 가계부채 증가 탓을 50년 만기 주담대로 돌리는 것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전문가들은 가계대출의 근본적인 증가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가계대출은 부동산 시장과 맞물려 주택을 찾는 수요에 따라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는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며 늘어난 것이란 얘기다. 은행권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취급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으면 차주들은 대출을 찾지 않아 가계대출은 감소한다.

금융 당국의 과도한 개입에 결국 피해를 본 건 결국 금융소비자다. 시장에서는 이미 당국이 나섰으니 상품이 곧 사라질 것이란 인식이 커지며 일주일 만에 대출 잔액이 1조원 넘게 불어나는가 하면 절판 마케팅까지 등장했다. 연령 제한을 두고서는 인터넷상에서 세대 갈등 여론도 조장됐다. 일부 차주들은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보고 주택 구매를 계약하려던 과정에서 상품이 사라졌다고 하소연한다.

금융 당국의 ‘50년 만기 주담대 가계대출 주범’ 발언은 은행권과 금융소비자에게 혼란만 가중했다. 당국은 지금이라도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을 통해 이른 시일 내 적절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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