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일본은 러 핵폐기물 투기 때 항의" vs 與 "역사 호도"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만 1주일이 지난 31일, 여야 지도부는 과거 일본이 러시아의 핵폐기물 투기에 항의했던 일에 대해 상이한 해석을 내놓으며 '외교사 논쟁'으로 설전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여당 지도부로부터 '오염수'가 아닌 '처리수'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사용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 "1993년 러시아가 방사성 폐기물 900톤을 블라디보스토크 연해에 버렸을 때, 일본은 '방사능 스시를 먹게 됐다'면서 주일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가서 격렬하게 항의했고 일본 정부는 외교·경제 채널을 총동원해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며 "(이는) 일본 국가정책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는 "일본 정부는 그해 11월에 런던에서 열린 런던협약(당사국 회의)에서 해양투기 금지 대상을 고준위 방사성 물질에서 저준위 방사성 물질로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을 주장했고, 결국 일본의 뜻대로 런던의정서는 모든 방사성 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금지하게 됐다"며 "그랬던 일본 정부가 핵물질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일본 정부에 묻는다. 1993년의 일본은 틀린 것이고, 2023년의 일본이 맞는 것이냐"면서 "우리 정부에도 묻는다. 1993년 일본 정부는 러시아를 상대로 '방사능 폐기물 방류는 이웃 국가는 물론 세계적으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논리로 런던협약을 통해 러시아의 해양 투기를 저지했다. 이를 근거로 우리 정부도 일본 정부와 국제사회에 강경한 자세로 문제를 제기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박 원내대표는 "1993년 일본의 자세와 논리로 일본의 후쿠시마 핵물질 오염수 해양 투기를 저지해야 한다"면서 "일본 정부가 성공한 일을 우리 정부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부와 여당이 실효적인 대안은 외면하면서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입장을 국익과 반해서 계속 지켜나간다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배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불과 1시간 후, 박 원내대표의 '카운터파트(맞수)'인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로부터 정면 반박이 제기됐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전남 순천만정원에서 연 국민의힘 현장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민주당이 국민을 설득할 근거가 부족하자 이제는 역사까지 입맛대로 해석해 국민을 호도하려 한다"며 "민주당은 1993년 러시아 해군이 핵물질을 바다에 버리려고 했을 때 일본이 시위하고 국제법으로 문제 삼아 중단시킨 전례가 있다며 우리도 똑같이 하자고 주장하는데, 당시에 러시아는 무려 30년 가까이 동해 부근에 화학적 안전처리가 안 된 핵폐기물을 몰래 버리다가 발각됐기에 우리나라와 일본이 모두 들고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러시아가 방류를 중단하는 것은 당연했다"고 반박했다.
윤 원내대표는 "반면에 일본은 국제사회에 방류 계획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오염수 처리 과정에 대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을 받았는데, 후쿠시마 처리수가 어떻게 1993년 러시아 핵폐기물 무단 방류 사례와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단 말이냐"며 "아무리 왜곡 선동이 민주당의 특기라지만 이런 식이라면 한 번 더 국제적 망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의 말에서 주목된 것은 민주당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보다도 "후쿠시마 처리수"라는 표현이었다. 그는 "수협에서 일본에서 방류하는 오염수를 후쿠시마 처리수로 부르겠다고 발표하면서 정부에서도 명칭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수협에서 이처럼 먼저 명칭 변경을 제안한 것을 보면 지금 수산업 관계자들이 국민의 수산물 소비 심리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반일이 곧 정의이며 후쿠시마 처리수는 악의 산물이란 광적인 믿음 때문에 수산업계의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라거나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 반대는 빌미에 불과하고 본심은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론을 불붙이는 데 있다"고 '처리수'라는 표현을 두어 차례 더 사용했다.
윤 원내대표는 "비록 수산물 소비가 지속되고 있다곤 하나, 손님이 줄었다는 횟집 사장님들의 호소를 들어보면 현장에서 체감하는 상황은 지표보다 열악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 수산업 1번지라 불리는 이곳 전라남도에서 소비가 줄어 양식장 물고기를 판매하지 못하고 사료값만 나간다고 아우성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전날) 전남에 와서 '수산업이 걱정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처리수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여니 그 집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위선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전날 민주당의 무안·목표 방문 일정을 겨냥하기도 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과 여당 중진의원 간에 오염수 문제를 두고 설전이 빚어지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소병훈 농해수위원장은 소관 정부부처 결산 의결을 앞두고 모두발언을 통해 "지난 24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를 자행해 핵 오염수가 이 시간에도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가짜뉴스'라는 말로 여론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 정략적 선동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안타깝다"고 했다.
소 위원장은 "오염수 문제는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우리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 문제"라며 "정부는 책임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을 국민의 책임으로 돌려 계속해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국민을 반으로 가르려는 태도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투기는 명백히 잘못된 결정이고, 국민의 먹거리 불안은 당연하다. 때문에 우리 국민이 핵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는 것은 '1+1=2'라는 자연적 법칙과 같이 지극히 온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28일 발언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4선 중진인 홍문표 의원은 회의 말미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걱정 안 하는 국민이 누가 있느냐"며 "국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농해수위 위원들이 모여 '어떻게 이 염려와 불안을 해결할 수 있나' 하는 방향에서 회의를 진행해야지, 민주당 당론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면 듣는 여당 의원들은 뭐가 되나"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홍 의원은 "이렇게 편파적으로 진행하면 아무리 잘해도 불만이 남게 돼 있다"며 "우리가 치고받고 논쟁하는 장을 만드는 게 위원장의 할 일이지, 방향까지 규정하면 우리가 토론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한다"고 했다.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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